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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8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 오군영의 하나로 인조대에 설치한 수어청의 최고책임자.

내용

병자호란 때 수어사(守禦使)이시백(李時白)이 남한산성을 방어한 이후 설립한 수어청의 대장을 말한다. 수어청이 남한산성에서 청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와중에 설립하였으므로, 수어대장의 주요 임무는 남한산성의 방어였다. 효종대에 총융청이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해 설립되면서, 도성을 중심으로 경기 북부는 총융청, 경기 남부는 수어청이 담당하였다. 따라서 수어대장은 도성의 남부 지역 방어를 관할하는 지위였다. 인조대 이후 수어청은 남한산성의 군영과 도성 내의 수어경청(守禦京廳) 두 곳으로 나뉘어 조직되었는데, 수어대장은 주로 경청에서 근무하였다. 따라서 수어대장은 남한산성의 방어보다는 궁궐의 시위와 국왕의 호위를 군영 대장들과 돌아가면서 담당하였다. 또한 도성에 머무는 주요 군대의 지휘관이므로 정치세력과 밀접한 인물이 대장직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수어대장의 본래 임무가 남한산성의 방어임에도 경청을 설치하여 도성 안에 머물면서 제반(諸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남한산성의 재화만 소모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정조대에는 왕권의 강화와 군사재정의 일원화라는 명목으로 수어경청을 혁파했다. 정조는 광주부를 유수로 승격시키면서, 광주유수가 남한수어사(南漢守禦使)를 겸하게 했으며 기존의 수어대장과 수어청을 폐지하여 군사 재정의 절감을 도모하였다(『정조실록』 19년 8월 18일). 이후 순조의 즉위와 함께 진행된 장용영의 철폐에 따라 기존 수어청에 물력이 환원되었지만, 수어대장직은 부활되지 않았다(『순조실록』 2년 2월 7일).

용례

癸卯召見承旨 上曰大將之名 責任不輕 而實無歸屬處 各道兵水使 皆以實職書銜 而軍門將臣 則不用實職 當初設置軍門之意 雖倣五衛之制 而都監則若提調衙門 猶有意義之可言 禁御兩營 則可謂有名無實 反不如守摠之有歸屬依據 革去大將之號 改以御營使禁衛使似好 而事係更張 未果輕議也(『정조실록』 1년 2월 7일)

참고문헌

  •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 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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