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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56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에 일과력(日課曆), 칠정력(七政曆), 일식과 월식 등을 계산하던 관상감의 관직.

개설

조선후기에 관상감에서 일식이나 월식을 계산할 때는 시헌력(時憲曆)이 주요 역법이고 『칠정산(七政算)』은 보조 역법으로 사용되었다. 추보관(推步官)은 바로 이 『칠정산』으로 일식이나 월식을 계산하던 관상감 관리를 말하는데, 『칠정산』이 대통력과 대동소이하므로 흔히 대통추보관(大統推步官)이라고 한다.

담당 직무

대통력(大統曆)과 대동소이한 『칠정산』으로 일과력, 칠정력, 일월식(日月食)을 계산하는 일을 맡았다.

변천

조선후기에는 1654년 책력부터 시헌력을 사용하여 작성됨에 따라 대통력 즉 『칠정산』은 역일(曆日) 계산, 칠정(七政)의 위치 계산, 일식과 월식을 계산하는 부문 등에서 시헌력을 보조하는 역법으로 취급되었다. 청나라의 시헌력이 수시로 조금씩 변경되었으므로 조선의 관상감 천문학자들은 매번 이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심해야 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청나라의 역법이 안정되어 제도 변경이 거의 마무리되고, 마침내 그 계산법이 최종적으로 정립되었다. 시헌력으로 이러한 계산을 맡은 관상감 관원을 수술관(修述官)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통력 즉 『칠정산』 대신에 시헌력으로 역일을 계산하게 되었으므로 해당 관직인 대통추보관은 1791년(정조 15)에 관상감의 제도를 개혁할 때 다음과 같이 혁파되었다. 즉, 대통추보관은 급료를 받는 자리가 4자리였으나, 2자리는 수술관에게 넘기고 2자리는 명과학(命課學)에 넘기게 하였고, 대통추보청(大統推步廳)에서 하던 대통력으로 일과력을 작성하는 일은 수술관이 맡도록 하여 매년 시헌력으로 계산한 동지(冬至) 책력(冊曆)을 제출할 때 그것도 함께 제출하되 대통력으로 칠정력(七政曆)을 작성하는 업무는 없애버렸다(『정조실록』 15년 10월 27일).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추보관이 단순히 일식이나 월식을 추보(推步)하는 관상감 관원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정조실록』 즉위년 12월 21일).

참고문헌

  • 『서운관지(書雲觀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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