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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37 기준 최신판



중국(中國) 청(淸)나라 덕종(德宗) 대에 사용한 연호로(1875년~1907년), 조선(朝鮮)에서는 고종(高宗)즉위년부터 고종32년(1896년)까지 사용한 연호.

개설

중국 청나라의 제 11대 황제인 덕종이 사용한 연호로(1875년~1907년), 덕종은 연호인 광서(光緖)를 본 따 광서제(光緖帝) 혹은 광서 황제(光緖皇帝)라고도 불린다.

당시 청나라는 서양과의 잦은 마찰로 국력이 쇠퇴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덕종은 개혁 정책을 실시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태후(西太后)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개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편 조선은 1875년(고종즉위)부터 1896년(고종32)까지 이 연호를 사용하였고, 이후로는 조선의 첫 연호인 ‘건양(建陽)’을 사용하였다. 이런 까닭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조선이 독자 연호를 사용하기 이전까지의 『고종실록(高宗實錄)』에서만 광서 연호를 찾을 수 있으며, 대부분 외국과 체결한 조약에서 연대(年代) 표시를 하기 위하여 등장한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청사고(淸史稿)』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