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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로 제작된 잔과 잔받침.

개설

청화대잔(靑畵臺盞)은 청화백자로 제작된 잔과 잔받침[托]의 조합 즉 한 벌을 의미한다. 1450년(문종 즉위)에 명나라 사신 윤봉(尹鳳)이 왕에게 바친 품목에 포함되어 있는데, 15세기 명대에 관요(官窯)에서 제작되었다(『문종실록』 즉위년 8월 6일).

연원 및 변천

잔받침에 대한 연원은 중국 당대(唐代)로 올라간다. 잔과 잔받침으로 구성되는 한 벌을 지칭하는 명칭은 반잔(盤盞), 반잔(盤琖), 대잔(臺盞)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고려사』에도 반잔이나 대잔의 기종이 확인된다. 특히 1231년(고려 고종 18)에 원나라 원수에게 보낸 국신물에 만루봉개주자(滿鏤鳳盖酒子)와 대잔 각 한 부가 포함되어 있고, 1293년(고려 충렬왕 19)에 왕과 왕비가 원나라 황태자비에게 바친 물품 중에 백은만루도금대잔(白銀滿鏤鍍金臺盞) 한 쌍이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도 잔과 잔받침이 연회나 의례 등에 사용되었으며, 술 외에 탕(湯)을 담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세종실록』 2년 윤1월 9일).

형태

조선시대에 명나라 황실에서 전해진 청화백자 잔과 잔받침의 형태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경덕진 주산(珠山)에 위치한 명대 관요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자기의 형태를 보면, 청화 잔받침은 구연 부분이 꺾인 전접시 형태에 안바닥면에 잔을 놓을 수 있게 둥글게 구획되었다. 북경 고궁박물원 소장 「명선종궁중행락도」에 묘사된 주탁(酒桌)에서 매병·관·주자·절요완 등의 다양한 주기(酒器)와 쌍이잔(雙耳盞)을 받친 전접시 형태의 잔받침을 볼 수 있다. 『세종실록』「오례(五禮)」 흉례서례(凶禮序例) 명기(明器)에서 잔에 ‘자기유대(甆器有臺)’라는 설명과 함께 잔과 대의 형태가 도해되어 있다. 작은 잔에 낮고 구연이 꺾인 전접시 모양의 받침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김윤정, 「朝鮮初 酒器의 조형 변화와 원인」, 『강좌미술사』 37호,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1.
  • 이현정, 「15~16세기 朝鮮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미술사학연구』 270, 한국미술사학회, 2011.
  • 전승창,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 『미술사학연구』 264, 한국미술사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