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두창(皮頭槍)"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10일 (일) 00:21 기준 최신판



창끝에 가죽을 씌워 상대를 다치지 않게 만든 연습용 창.

개설

조선시대에 마상 창술을 연마하기 위해 사용하던 연습용 창이다.

연원 및 변천

1431년(세종 13)의 기록에서 피두창(皮頭槍)을 이용한 두 사람의 마상창술이 처음으로 확인된다. 모화관에서 군사들의 무예 훈련의 하나로 마상창술을 시행하였는데, 가죽으로 창끝을 싸서 만든 피두창을 가지고 두 사람이 말 위에서 달리며 서로 접근하여 좌우로 충격을 가하거나, 나란히 달리며 서로 찔러 승부를 냈다(『세종실록』 13년 3월 18일). 피두창은 창끝에 가죽을 입힌 연습용 창으로 붉은 물을 묻혀 사용하였다. 1460년(세조 6)에는 피두창을 이용한 삼갑창(三甲槍)을 시행하였다(『세조실록』 6년 6월 6일). 이후 피두창은 조선시대 내내 마상 창술의 연마용으로 시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피두창을 이용한 마상 창술은 두 사람이 겨루는 이갑창(二甲槍)과, 세 사람이 겨루는 삼갑창의 방법이 있었다. 삼갑창은 날쌘 기마(騎馬)를 뽑아서 그 다소(多少)에 따라 갑(甲)·을(乙)·병(丙) 3대(隊)로 나누어 그 표지(標識)를 다르게 하였는데, 피두창 끝에 붉은 물을 들여 꽂고 하여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 북을 치면 갑·을·병이 각각 2인씩 두루 말을 달리면서 서로 치거나 찌르는데, 갑은 을을 찌르고, 을을 병을 찌르고, 병은 갑을 찌르되, 징[鉦]을 울리면 말을 달려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참고문헌

  • 심승구, 「조선시대의 무예사 연구―모구를 중심으로―」, 『군사』38집,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