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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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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방렴 |
한글표제 | 방렴 |
한자표제 | 防簾 |
상위어 | 잡세(雜稅) |
하위어 | 건방렴(乾防簾) |
관련어 | 어기(漁基), 어장(漁場), 어조(漁條), 어전(漁箭) |
분야 | 경제/재정/잡세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경상도, 함경도, 강원도 |
시대 | 대한민국 |
왕대 | 대한민국 |
집필자 | 이욱 |
용도 | 어획 |
재질 | 소나무, 대나무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방렴(防簾) |
바다에 발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재래식 고기잡이 도구의 일종.
개설
통발[漁筌]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고기잡이 도구였다. 다만 어전은 조수의 간만을 이용하여 간석지에 설치하였다. 반면 방렴은 조수의 간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을 찾아 물 가운데에 설치하고 구조도 약간 복잡하였다. 방렴은 대 또는 갈대로 만든 발과 고기를 가두는 임통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소나무로 만든 지주로 고정하였다. 경상도 연해를 중심으로 하여 함경도 및 강원도의 일부 지역에서 청어 또는 대구를 포획하기 위해 주로 설치하였다.
내용 및 특징
석방렴은 경상도와 전라도 연해에서 멸치·고등어·새우·전어 및 기타 소잡어(小雜魚)를 어획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그 구조는 발 대신에 약간 경사가 급한 간석지에 돌담을 쌓고, 돌담의 한쪽 아래쪽에 지름 1척 내외의 구멍을 뚫어 통발을 삽입해 놓은 간단한 형태의 원시적인 것이었다. 이는 석전 또는 석제라고도 불렀다.
잡어 방렴은 불과 10m 길이 정도 되는 작은 규모의 대나무발을 바닷물이 드나드는 길목에 설치하여, 물이 빠질 때 발에 막혀 바다로 나가지 못한 고기를 잡는 것이었다. 물이 빠지면 뭍이 되므로 건방렴이라고도 하였다. 그 원리가 어전과 거의 비슷하고, 남해안에서 학꽁치·전어·새우 등의 잡어를 잡는 데 이용하였다.
이러한 특수한 방렴을 제외하고 비교적 규모가 큰 방렴은 어장을 설치하는 장소와 조건이 비슷한 곳에 설치되었다. 즉, 방렴은 그 설치 장소가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발을 설치하면 방렴이 되고, 배를 정박한 채 그물로 어업을 하면 어조가 되었다.
참고문헌
- 박구병, 『韓國漁業史』, 정음사, 1975.
- 최승희, 『한국수산사』, 수산청, 1966.
- 이영학, 「조선후기 어업에 대한 연구」, 『역사와 현실』 35 , 한국역사연구회, 2000.
- 이욱, 「조선후기 어염정책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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