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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9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 무예(武藝) 십팔기(十八技) 또는 무예 이십사반(二十四般) 가운데 군사들이 일본도(日本刀)를 가지고 하던 무예.

내용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이미 왜검을 수입했으며, 조선초기에는 왜인들이 상당량의 왜검을 진상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초기의 기록을 보면 조선으로 귀화한 왜인이 조선에서 왜검을 제작하거나 혹은 조선인이 일본에 건너가서 직접 왜검 제작기술을 익히고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총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조선이 편전과 총통으로 원거리에서 왜구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단병기인 왜검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인들은 조총을 이용한 보병전술로 조선군을 무력화하고 예리한 왜검으로 돌진하여 조선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의 도검 제작기술을 도입하는 한편, 잘 발달된 일본의 검술을 습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왜검의 대량 보급에는 한계가 있었다. 왜검의 형태는 조선후기 환도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 전래되었거나 일본도를 모방하여 만든 칼로는 왜검, 왜별장검(倭別長劍), 왜장검(倭長劍)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직후인 1594년(선조 27)에 장창(長槍)·당파(鏜鈀)·낭선(狼筅)·쌍수도(雙手刀)·등패(藤牌)·곤봉(棍棒) 등 무예 6기가 도입된 이후 1749년(영조 25)에 죽장창(竹長槍)·기창(旗槍)·예도(銳刀)·왜검(倭劍)·교전(交戰)·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쌍검(雙劍)·월도(月刀)·협도(挾刀)·권법(拳法)·편곤(鞭棍) 등 12기를 합하여 무예 18기가 정립하였다. 나아가 1790년(정조 14)에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는 기존의 무예 18기에 마상월도(馬上月刀)·마상편곤(馬上鞭棍)·마상곤봉(馬上棍棒)·격구(擊毬)·마상재(馬上才)·마상쌍검(馬上雙劍) 등 6기를 추가하여 무예 24반이 완성되었다.

용례

武藝圖譜通志成 (중략) 英宗己巳 莊獻世子代理庶政 歲己卯 命增入竹長鎗旗鎗銳刀倭劍交戰月挾刀雙劍提督劍本國劍拳法鞭棍十二技 纂修圖解 作爲新譜(『정조실록』 14년 4월 29일)

참고문헌

  •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연병지남(練兵指南)』
  • 국사편찬위원회 편,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경인문화사, 2008.
  • 임동규, 『한국의 전통무예 : 24반 무예를 중심으로』, 학민사, 1990.
  • 김산, 「무예도보통지 長兵武藝 복원의 실제와 비판」,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김산·김주화, 「무예도보통지의 勢에 대한 연구」, 『체육사학회지』l-13, 2004.
  • 이근채, 「무예도보통지의 편찬과정과 무예사적 가치」, 한국체육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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