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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3:13 기준 최신판



참리들의 공무 수행 대가로 지급한 전지.

내용

조선시대 역(驛)의 명칭은 역뿐만 아니라 역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참(站)·관(館)·합배(合排) 등으로도 불렸다. 예를 들면 황해도에서 참이, 평안도에서는 참·관·합배가, 함경도에서는 참·관이 혼용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의 참은 수참(水站)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참 소속의 참리(站吏)에게 공무 수행의 대가로 절급한 전지(田地)가 참리전(站吏田)이었다.

용례

司憲府啓 七站察訪李伯善 以逃亡站吏田 不給立馬之人 與人幷作 所出雜穀 視爲己物 贈遺於司譯院直長任孝連前判事李讌等九人 又聽其妻之請 以粟五石 給平壤判官崔悌男妻李氏 又聽吏曹判書權孟孫女壻前直長金係權之請 贈蓑衣及鹿皮 又以眞荏子十斗 暗賂孟孫 爲後日之地(『문종실록』 1년 11월 24일)

참고문헌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이장우, 「조선초기의 역전」, 『역사학보』 142,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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