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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59 기준 최신판



영조의 후궁이며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생모인 정빈이씨(靖嬪李氏)의 제사궁(祭祀宮).

개설

정빈이씨는 영조가 연잉군(延礽君) 시절에 맞이한 후궁으로, 세제로 책봉되자 종5품 소훈(昭訓)에 봉해졌으나 곧 죽었다. 1724년(영조 즉위)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4품 소원(昭媛)에 추증되었고, 1725년(영조 1)에는 효장세자의 생모로서 정빈(靖嬪)으로 추증되었다(『영조실록』 1년 2월 27일).

묘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숙빈최씨(淑嬪崔氏)의 묘인 소령원(昭寧園)의 맞은편 수길원(綏吉園)에 있다. 연호궁은 정빈이씨를 제사 지내는 궁으로써, 무덤과 마찬가지로 숙빈최씨의 육상궁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건립되었고, 이후 다른 곳으로 한 번도 옮겨진 적이 없다.

위치 및 용도

연호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제사궁인 육상궁(毓祥宮)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행정 구역으로는 한성부 북부 순화방(順化坊)이며 현재의 주소는 서울특별시종로구 궁정동이다. 연호궁은 정빈이씨의 제사궁으로, 소속된 궁장토 및 재산을 관리하는 기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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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및 현황

1721년(경종 1) 정빈이씨가 졸서한 이후, 연호궁을 짓고 이곳에 정빈이씨의 위패를 모셨다. 이후로 불에 타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

1907년(융희 1) 궁내부령으로 내수사(內需司)와 궁장토의 도장(導掌)을 폐하면서 연호궁 소속 토지도 다른 궁의 재산과 마찬가지로 제실 재산 관리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908년(융희 2)에는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등과 더불어 위패를 육상궁으로 옮겨 봉안했다. 당시 대부분의 폐궁(廢宮)이 국유로 넘어간 데 반해 연호궁은 위패가 옮겨져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지만 국유로 넘어가지 않았다(『순종실록』 1년 7월 23일).

현재 육상궁과 연호궁이 있던 위치에는 칠궁이 들어서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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