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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1:52 기준 최신판



송나라 진자명이 1237년(송나라 가희 원년)에 저술한 부인과 전문 의서.

개설

중국 송나라 진자명(陳自明)이 1237년(송나라 가희 원년)에 편찬한 의서로 전24권이었다. 송나라 이전에 나온 산부인과에 관한 저작을 모아 정리 편집한 것으로, 조경문(調經門)·중질문(衆疾門)·구사문(求嗣門)·태교문(胎敎門)·임신문(姙娠門)·좌월문(坐月門)·산난문(産難門)·산후문(産後門)의 8문으로 나뉘어졌다. 설기본(薛己本)에는 후태문(候胎門)이 더 있었다. 매 문마다 약간의 병증으로 구분하였는데, 모두 200여 가지 논설이 들어 있고, 각각 부인과 질환의 병인(病因)·증후·치료법을 설명하였다. 동아시아 의학에서 대표적인 부인과 전문 의서로 알려져 있다. 『부인양방대전(婦人良方大全)』·『부인대전양방(婦人大全良方)』·『부인양방집요(婦人良方集要)』라고도 불렀다.

편찬/발간 경위

진자명이 송대에 처음 편찬한 이후 원본이 잘 전해지지 않았으며, 지금 널리 쓰이는 것은 원대 웅종립(熊宗立)의 보유본(補遺本)과 설기(薛己)의 교주본이었다. 청대에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할 때에도 완본(完本)을 구하지 못하여 일부 내용이 빠진 채 일부분만 초사(鈔寫)되었다. 조선간본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전해져 일본 의학에 귀중하게 사용되었다.

서지 사항

송나라 진자명이 1237년(송나라 가희 원년)에 처음 저술한 이후 원간본은 남아 있지 않고, 조선에서 갑진자(甲辰字)로 간행된 판본이 가장 진본의 모습을 담은 최고의 판본으로 공인되었다. 조선 갑진활자 중간본은 24권 9책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비하여 명나라 설기(薛己)가 교주(校注)한 판본은 서명을 『교주부인양방(校注婦人良方)』이라 하였으며, 내용을 부분적으로 첨삭한 외에 안어(按語)와 치험(治驗)을 추가하였다.

구성/내용

전서는 전체 8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8대강(大綱)을 보면 조경문·중질문·구사문·태교문·임신문·좌월문·산난문·산후문으로 열거하여 임신과 출산을 전후하여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성하였음을 볼 수 있다. 세종대에 편찬한 조선 의학 최대의 의방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의 「인용제서(引用諸書)」에는 진자명의 저술인 『외과정요(外科精要)』를 비롯하여 『관견대전양방(管見大全良方)』과 『부인대전양방』이 나란히 올라 있었다. 또 『동의보감』 부인문에는 임신문 이하 산후제질에 이르기까지 후반부의 내용이 주로 인용되어 조선 의학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과 부인과 질환에 대한 범주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양방(良方)’이란 약칭으로 의론과 처방 모두 폭 넓게 채록하였지만, 허준은 『동의보감』을 편찬할 때 명나라 웅종립의 보유본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처방과 문사가 다소 다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안산방위도(安産方位圖)와 최생부(催生符) 그림이었다. 미신적인 요소로 여기던 부분인데, 둘 다 이 책이 출전으로 되어 있어 대조해 보니, 방위도는 내용을 도해하여 별도로 작성한 것이고, 최생부는 여러 장의 영부(靈符) 중에서 단 1종만 가려 낸 것이었다. 이 내용은 『화제국방(和劑局方)』·『성혜방(聖惠方)』으로부터 전습되어 온 것인데, 한의학 역시 합리적인 의학 사상이 자리 잡으면서 미신적인 색채가 탈색되어 가는 과정의 흔적으로 볼 수 있었다.

세종·세조·성종대 의학 취재(醫學取才) 고강서(考講書)로 쓰인 사실이 기록으로 전하므로, 대략 고려시대에 전래된 후 주로 조선전기에 의학 교재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 그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 중국에서 간행한 교주본은 결본 상태인 원나라 각본을 저본으로 웅종립의 보유본, 설기의 교주본 등으로 교감한 것인데, 조선판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들 역시 조선판을 대본으로 초사한 일본전초본(日本轉抄本)을 참고하였지만 우선 목록만 보아도 고판본의 상세함에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잉원입본장(孕元立本章)·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 같은 조문은 조선판에서 보궐한 것이었다.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좋은 판본인 이 책이 수백 년 비바람 맞고 오늘까지 보존된 것은 동북아 의학 사상 일대 경사가 아닐 수 없다.”는 중국 학자의 감탄은 비단(다만) 책을 찍어 낸 조선인과 조선판본에 국한한 찬사가 아닐 것이다.

조선판 부인양방에서 손에 꼽는 선본(善本)은 모두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단정하고 섬세한 작은 글씨체로 인쇄된 조선판 부인양방은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의 수장품으로 애호를 받았다. 1832년(순조 32)에 이 책을 수중에 넣은 일본 고증의학파의 대가 단파원견(丹波元堅)은 당시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웅씨(熊氏)의 보유본도 전하는 것이 드물어 앞을 다투어 귀중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조선에서 간행한 진씨(陳氏)의 진본이야! … 실로 구하기 힘든 비급(秘笈)이니 어찌 보배로이 아끼지 않을 수 있으랴.” 15세기 조선의 의학 교과서가 19세기 일본에서 최고의 보물이 된 것이었다.

참고문헌

  • 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 안상우, 「보물이 된 조선의 교과서-『婦人大全良方』」, 『고의서산책』 27회, 민족의학신문, 2000.
  • 홍난영, 「『婦人大全良方』의 서지학적 연구」, 『서지학연구』 6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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