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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 22:06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일시적으로 관찰사 소속으로 두었던 종5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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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관찰사 소속으로 겸도사(兼都事)가 처음 거론된 것은 1481년(성종 12) 8월이었다. 당시 전라도에 농사 상황이 좋지 않아 구황 전담을 위해 겸도사를 파견하려 했었다. 이때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경상도·황해도·평안도에 각 1명씩의 겸도사를 파견하라는 왕명이 있었다. 그러나 겸도사는 자율성이 없어 관찰사의 통제를 받게 되므로 실제로 구황을 하지 못할 것이라거나, 각 지방에서 겸도사의 물품 비용을 대는 것이 어렵다고 하여 파견 대상 지역이 평안도로 한정되었다. 이후 평안도에 파견된 겸도사도 같은 해 12월에 혁파되었다.

담당 직무

관찰사 소속 겸도사는 주로 구황과 같은 특별 임무를 수행하거나, 관찰사 업무의 일무를 대행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1866년(고종 3) 7월 평안도 지역의 과거시험에서 대과(大科)와 소과(小科)의 초시 실시 예정일이 칙사의 행차와 같았다. 감사는 칙사의 행차를 맞이해야 하므로, 대소과 초시의 주관을 위해 용강현령유초환(兪初煥)을 겸도사를 차출하여 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변천

성종 연간 이후 겸도사가 다시 부각된 것은 중종 때이다. 1508년(중종 3) 경기감영에서 중앙으로 올리는 진상품의 봉헌을 위해 군직(軍職)에 있거나 무록관(無祿官)별제(別提)를 겸도사에 제수하자고 하였다. 이 밖에도 함경도 지역의 구황 전담을 위해 겸도사를 파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실제 설치 여부는 알 수 없다. 이후 고종 연간에도 겸도사가 한때 설치된 적이 있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