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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 22:05 기준 최신판



창경궁에 있던 현종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혼전의 존재 기간은 왕과 왕후에 따라 달랐다.

1674년(현종 15) 현종이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경’으로 정하였다(『숙종실록』 즉위년 8월 24일). 5개월 뒤 숭릉(崇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 정전 제11실에 부묘할 때까지 효경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674년 8월 18일 현종이 창덕궁 재려(齋廬)에서 승하하였다. 5개월 뒤 12월에 숭릉에 재궁을 묻고 반우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숙종실록』 즉위년 12월 13일). 이때 조성한 혼전명이 효경전이다.

현종의 혼전 전각은 창경궁의 문정전이었다. 그 뒤 1675년(숙종 1) 궁인 중에 천연두를 앓는 이가 있어 숙종이 경덕궁으로 이어(移御)하면서 효경전도 경덕궁으로 옮겼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혼전이 창덕궁 안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효경전에 반우한 날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대상제(大祥祭), 담제(禫祭)를 모두 거행하였다. 그밖에 조석상식(朝夕上食), 사시(四時) 및 납(臘) 제사, 속절(俗節) 및 삭망(朔望) 제사를 효경전에서 지냈다. 1676년(숙종 2) 10월 15일 현종의 신주를 태묘에 부묘하였다.

변천

1530년(중종 25)에 승하한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의 혼전명도 효경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렇듯 혼전명이 동일한 혼전이 존재하였다.

참고문헌

  • 『춘관통고(春官通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