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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 22:04 기준 최신판



창경궁에 있던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혼전의 존속 기간은 왕과 왕후에 따라 달랐으며, 왕후는 왕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승하하느냐에 따라 존속 기간이 달랐다. 정현왕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경우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1530년(중종 25) 정현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경(孝敬)’으로 정하였고(『중종실록』 25년 8월 27일), 3개월 뒤 선릉(宣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성종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효경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

내용 및 특징

1530년(중종 25) 8월 22일 정현왕후가 동궁의 정침(正寢)에서 승하하였다. 3개월 뒤 10월에 선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중종실록』 25년 10월 29일). 이때 조성한 혼전명이 효경전(孝敬殿)이다.

정현왕후의 혼전은 정현왕후가 평소에 거처하던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으로 정하였다. 효경전의 위치에 대해 『중종실록』에는 창경궁 문정전으로 기록되어 있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경복궁 안에 있었다고 하여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반우한 날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대상제(大祥祭), 담제(禫祭)를 모두 효경전에서 거행하였다. 그밖에 조석상식(朝夕上食), 사시(四時) 및 납(臘) 제사, 속절(俗節) 및 삭망(朔望) 제사를 효경전에서 행하였다. 1532년(중종 27) 10월 11일 정현왕후의 신주를 태묘의 성종실에 부묘하였다.

변천

효경전(孝敬殿)은 조선의 제18대 왕인 현종의 혼전명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이렇듯 혼전명이 동일한 혼전이 존재하였다.

참고문헌

  • 『춘관통고(春官通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