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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9 기준 최신판




총론

[1671년(현종 12)∼1734(영조 10) = 64세.] 조선 후기 숙종~영조 때의 역관(譯官), 학자. 행직(行職)은 교회(敎誨)이다. 자(字)는 국미(國美)이고, 호(號)는 성재(省齋)이다.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충찬위(忠贊衛) 고익후(高翊厚)이고, 어머니 삼척김씨(三陟金氏)는 김흥원(金興元)의 딸이다.

숙종 시대 활동

1687년(숙종 13) 역과(譯科)에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17세였다.[<역과방목>] 이후 역관이 되어 여러 차례 청(淸)나라를 왕래하였는데, 외교관으로서 그 공을 인정받아 품계가 종2품하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영조 시대 활동

1734년(영조 10) 다시 진주사(陳奏使)를 따라서 청나라에 갔으나, 북경의 회동관(會同館)에서 10월 19일 병사하였는데, 향년이 64세였다.[『갑인연행록(甲寅燕行錄)』]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특히 한시(漢詩)에 뛰어나 당대의 평민시인인 임원준(林元俊)·홍세태(洪世泰)·정내교(鄭來僑) 등과 함께 당풍(唐風)을 본받은 4대시인으로 일컬어졌다. 일반적으로 사리(辭理)가 정연한 시를 짓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대제학남유용(南有容)도 그의 문장을 칭찬하였다. 만년에는 세조 때부터 영조 때까지의 서민시(庶民詩)를 수집하여 『소대풍요(昭代風謠)』를 편찬하였는데, 조선시대의 중요한 시문학 자료로 쓰인다. 저서로 『성재집(省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역과방목(譯科榜目)』
  • 『갑인연행록(甲寅燕行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국포집(菊圃集)』
  • 『뇌연집(雷淵集)』
  • 『서당사재(西堂私載)』
  • 『설초유고(雪蕉遺稿)』
  • 『성재집(省齋集)』
  • 『유하집(柳下集)』
  • 『희암집(希菴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