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해소학(直解小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XML 가져오기)
1번째 줄: 1번째 줄:
  
  
{{문헌|대표표제=직해소학|한글표제=직해소학|한자표제=直解小學|대역어=|상위어=역학(譯學), 한학(漢學)|하위어=|동의어=|관련어=『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 사역원(司譯院), 역관(譯官)|분야=정치/인사/선발|유형=문헌|지역=|시대=|왕대=|집필자=정광|저편자=설장수(偰長壽)|간행처=미상, 조선전기 사역원으로 추정|간행년일=미상|권책수=미상|사용활자=미상|표제=直解小學|소장처=원전은 전하지 않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46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3018_002 『세종실록』 12년 3월 18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9020_007 『성종실록』 14년 9월 20일], [http://sillok.history.go.kr/id/kba_10110019_003 『정종실록』 1년 10월 19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9029_003 『성종실록』 14년 9월 29일]}}
+
{{서명사전|대표표제=직해소학|한글표제=직해소학|한자표제=直解小學|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철학/종교/교육|유형=문헌|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세종|집필자=성낙수|저편자=설장수(偰長壽)|간행처=|간행년일=1441년(세종 23)|권책수=8권 4책|사용활자=|표제=|소장처=|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08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308011_003 『세종실록』 23년 8월 11일]}}
  
조선전기에 사역원의 한학에서 사용한 한어 교재.
+
조선 초기 설장수(偰長壽)가 『소학(小學)』을 한어로 직해한 책.
  
 
=='''개설'''==
 
=='''개설'''==
  
『직해소학(直解小學)』은 고려말에 설장수(偰長壽)가 사역원의 한어 교재로 편찬한 책이다. 원래 유교 경전으로 훈몽 교과서였던 『소학(小學)』을 원(元) 대의 공용어인 한아언어(이하 한어로 약칭)로 풀이한 것이었다. 1430년(세종 12) 상정소(詳定所)에서 제학(諸學)의 취재에 출제서를 정하여 보고한 계문(啓文)([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3018_002 『세종실록』 12년 3월 18일])에서 역학 한훈(漢訓, 한학을 말함)과 한이학(漢吏學)의 출제서로 『직해소학』의 서명이 보였다. 또 『경국대전』「예전(禮典)」 ‘역과초시(譯科初試)’ 강서(講書)조에 배강(背講)을 해야 하는 본업서(本業書) 3책으로 『노걸대』·『박통사』와 함께 『직해소학』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역과(譯科) 한학(漢學)의 기본 출제서이며 한어 교육의 기초 교재였음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 판본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
『직해소학(直解小學)』은 고려 말과 조선 시대에 널리 보급되었던 한어(漢語) 학습서 가운데 하나로, 위구르족 출신의 귀화인인 설장수가 『소학』을 한어로 직해한 책이다. 조선 초기부터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함께 역관들을 위한 중국어 학습 교제로 사용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편찬/발간 경위'''==
  
『직해소학』은 원대의 한어로 송()대에 편찬한 『소학』을 풀이한 것이므로 원본은 고려말에 편찬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어의 변천에 따라서 명()대의 공용어가 된 남경 관화로 이 책을 다시 수정하였는데, 1483년(성종 14)의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이에 앞서 임금이 영접도감 낭청(郎廳)인 방귀화(房貴和)에게 명하여, 두목 갈귀(葛貴)로 하여금 『노걸대』와 『박통사』를 교정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또 『직해소학』도 질정하려고 하니”라는 기사([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9020_007 『성종실록』 14년 9월 20일])가 있어 『직해소학』도 이때에 『노걸대』·『박통사』와 더불어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거치면서 『직해소학』은 한어 교재로서 적절하지 않음이 밝혀져 다른 한학서로 바뀌었다. 즉, 양란(兩亂) 이후에 간행된 『속대전(續大典)』과 이보다 조금 앞서 간행된 『통문관지(通文館志)』에는 『직해소학』이 『오륜전비(伍倫全備)』로 바뀌었다.
+
설장수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위구르족 출신의 귀화인이다. 자()는 천민(天民)이고, 호는 운재(芸齋)이다. 경주 설씨(慶州偰氏)의 실질적인 시조(始祖)이다. 중국어와 몽고어에 모두 능통하여 중국과의 외교를 담당하며 사신으로서 명()나라로부터 조선 건국의 재가를 받았다. 또 사역원(司譯院) 교육의 체계화를 위하여 어학 교제인 『직제소학』을 직접 찬술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308011_003 『세종실록』 23년 8월 11일])
  
 
=='''서지 사항'''==
 
=='''서지 사항'''==
  
원전이 전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
총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구성/내용'''==
 
=='''구성/내용'''==
  
『직해소학』은 조선전기에 한어 교육의 기본 교과서였으며 고려에 귀화한 색목인(色目人) 설장수(偰長壽)의 소편이었다. 설장수는 위구르족의 고창(高昌) 사람이었던 아버지 백료손(伯遼遜)이 원나라에 복속(服屬)하였다가 다시 가족을 이끌고 고려에 귀화하였는데, 그때에 아버지를 따라 고려에 온 색목인이었다.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22세의 나이로 진사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갔고 『직해소학』을 찬술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ba_10110019_003 『정종실록』 1년 10월 19일]).
+
『소학』은 남송(南宋)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스승의 명에 따라 8세경의 아이부터 읽게 하기 위해 편찬한 책으로, 내편(內篇) 4권과 외편(外篇)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읽는 책, 혹은 학문의 초급자가 읽는 책이었다. 그러나 『소학』은 『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중용(中庸)』ㆍ『대학(大學)』과 같은 사서(四書)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내용 또한 그리 쉽지 않았다. 주희는 『소학』을 통해 주자학으로 나아가는 능력을 습득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책은 중국의 여러 경전과 역사서, 학자들의 글이 발췌되어 재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장의 수준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주희가 추구한 학문의 틀 속에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중국의 책이었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소학』은 조선 사회에서 주자학의 확산을 이끄는 첫머리에 놓여 있었으므로, 주자학을 깊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양반들에게도 교양과 과거 급제를 위해 이 책은 필수 교제였다.
 
 
송대 유자징(劉子澄)이 주자(朱子)의 가르침을 받아 지은 『소학』을 원대의 한어로 풀이한 것이지만 원전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역시 위구르인으로 원에 귀화한 관운석(貫雲石)이 유교 경전의 하나인 『효경(孝經)』을 한어로 풀이한 『직해효경(直解孝經)』이 오늘날 전해져서 이를 통해서 『직해소학』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직해효경』은 원대 공용어였던 한어로 『효경』을 풀이하여 이 언어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직해소학』은 원대 한어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 기대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전하는 판본이 없다. 아마도 『소학』과 같이 예법(禮法)과 선행(善行)·가언(嘉言)을 교육하는 훈몽서의 하나였으며,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한어를 함께 배우도록 한 교재일 것이다.
 
 
 
『직해소학』은 유교 경전으로서 훈몽서(訓蒙書)인 『소학』을 한어로 풀이한 것이다. 1483년(성종 14) 사행(使行)을 따라온 명나라 사람 두목(頭目) 갈귀(葛貴)는 『직해소학』을 보고 “번역은 매우 좋으나 간혹 옛말이 있어 시용에 맞지 않고 또 관화가 아니므로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 것([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9029_003 『성종실록』 14년 9월 29일])”이라고 하였다. 『직해소학』을 풀이하는 데 사용한 원대의 한어가 이미 명대에는 옛말이 되어 당시 공용어인 남경(南京) 관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정광, 『역학서 연구』, J&C, 2002.       
+
*『세종실록(世宗實錄)』     
*정광,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 김영사, 2014.       
+
*양오진, 「조선시대(朝鮮時代) 직해류(直解類) 한학서(漢學書)에 대하여」, 『중국어문논총』 35, 중국어문연구회, 2007.     
 +
*유영봉, 「왕조교체기의 ‘귀화시인’ 설손과 설장수 부자」, 『한문학보』 23, 우리한문학회, 2010.       
 +
*이재룡,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규범관-특히 예(禮)와 법(法)의 관계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고려대학교 대학원, 1993.    
 +
*주성일, 「조선시대 학습용 중국어와 명대 관화의 성질」, 『중국문학연구』 36, 한국중국문학회, 2008      
  
 
=='''관계망'''==
 
=='''관계망'''==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646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700000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분류:정치]][[분류:인사]][[분류:선발]][[분류:문헌]]
+
[[분류:철학]][[분류:종교]][[분류:교육]][[분류:문헌]][[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세종]]

2017년 12월 22일 (금) 01:20 판



조선 초기 설장수(偰長壽)가 『소학(小學)』을 한어로 직해한 책.

개설

『직해소학(直解小學)』은 고려 말과 조선 시대에 널리 보급되었던 한어(漢語) 학습서 가운데 하나로, 위구르족 출신의 귀화인인 설장수가 『소학』을 한어로 직해한 책이다. 조선 초기부터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함께 역관들을 위한 중국어 학습 교제로 사용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설장수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위구르족 출신의 귀화인이다. 자(字)는 천민(天民)이고, 호는 운재(芸齋)이다. 경주 설씨(慶州偰氏)의 실질적인 시조(始祖)이다. 중국어와 몽고어에 모두 능통하여 중국과의 외교를 담당하며 사신으로서 명(明)나라로부터 조선 건국의 재가를 받았다. 또 사역원(司譯院) 교육의 체계화를 위하여 어학 교제인 『직제소학』을 직접 찬술하였다.(『세종실록』 23년 8월 11일)

서지 사항

총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구성/내용

『소학』은 남송(南宋)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스승의 명에 따라 8세경의 아이부터 읽게 하기 위해 편찬한 책으로, 내편(內篇) 4권과 외편(外篇)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읽는 책, 혹은 학문의 초급자가 읽는 책이었다. 그러나 『소학』은 『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중용(中庸)』ㆍ『대학(大學)』과 같은 사서(四書)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내용 또한 그리 쉽지 않았다. 주희는 『소학』을 통해 주자학으로 나아가는 능력을 습득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책은 중국의 여러 경전과 역사서, 학자들의 글이 발췌되어 재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장의 수준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주희가 추구한 학문의 틀 속에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중국의 책이었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소학』은 조선 사회에서 주자학의 확산을 이끄는 첫머리에 놓여 있었으므로, 주자학을 깊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양반들에게도 교양과 과거 급제를 위해 이 책은 필수 교제였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양오진, 「조선시대(朝鮮時代) 직해류(直解類) 한학서(漢學書)에 대하여」, 『중국어문논총』 35, 중국어문연구회, 2007.
  • 유영봉, 「왕조교체기의 ‘귀화시인’ 설손과 설장수 부자」, 『한문학보』 23, 우리한문학회, 2010.
  • 이재룡,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규범관-특히 예(禮)와 법(法)의 관계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고려대학교 대학원, 1993.
  • 주성일, 「조선시대 학습용 중국어와 명대 관화의 성질」, 『중국문학연구』 36, 한국중국문학회, 200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