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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9 기준 최신판



중국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학자 마단림(馬端臨)이 저작한 제도와 문물사(文物史) 관련 저서.

개설

『문헌통고(文獻通考)』는 중국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학자 마단림(馬端臨)이 저작한 제도와 문물사(文物史) 관련 저서다. 상고(上古) 요순시대(堯舜時代)부터 남송(南宋) 영종시대(寧宗時代)까지 수천 년 간의 천지자연과 인간만사에 관한 사실을 20여 년의 노고로 해박하고 상세하게 편술하여 세교(世敎)와 후인에게 다시없는 보전(寶典)이다.

체제는 전부(田賦)ㆍ전폐(錢幣)ㆍ호구(戶口)ㆍ직역(職役)ㆍ정각(征榷)ㆍ시적(市糴)ㆍ토공(土貢)ㆍ국용(國用)ㆍ선거(選擧)ㆍ학교(學校)ㆍ직관(職官)ㆍ교사(郊社)ㆍ종묘(宗廟)ㆍ왕례(王禮)ㆍ악(樂)ㆍ병(兵)ㆍ형(刑)ㆍ경적(經籍)ㆍ제계(帝系)ㆍ봉건(封建)ㆍ상위(象緯)ㆍ물이(物異)ㆍ여지(輿地)ㆍ사예(四裔) 등 24항목으로 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모두 348권으로 정치가의 식견과 역사가의 정신을 발휘하여 20 여년에 걸쳐 완성하였고, 1319년에 간행되었다. 당(唐)나라 두우(杜佑) 저작인 『통전(通典)』, 송나라의 정초(鄭樵) 저작인 『통지(通志)』와 함께 ‘3통(三通)’이라 불린다. 3통 가운데 『통전』은 예(禮)에 자세하고, 『통지』는 기전(紀傳)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주로 경제ㆍ제도를 기술하였다.

『문헌통고』 이후에도 이 책의 체제를 따라, 각 왕조의 문물제도를 집대성한 책들이 계속 편찬되었다. 1586년 명나라의 왕기(王圻)가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254권을 편찬하여, 『문헌통고』 이후인 남송(南宋) 말부터 요(遼), 금(金), 원(元)을 거쳐, 명나라 만력(萬曆) 초년까지의 기사(記事)를 수록하여 놓았다. 또 명 말기에서 청 중기까지의 사료를 모은 『청조문헌통고(淸朝文獻通考)』도 편찬되었는데, 이 책은 『황조문헌통고(皇朝文獻通考)』라고도 하며, 300권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영조 때에 우리나라의 문물제도를 정리하여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100권을 만들었고, 그 후 다시 이것을 증보한 것이 고종 때 간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250권이다.

서지 사항

11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3.0cm, 가로 15.6cm이며,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저자 마단림의 자(字)는 귀여(貴與)로서 원의 초기 낙평인(樂平人), 송(宋)의 명상 마정란(馬廷鸞)의 아들이다. 송나라 도종(度宗)함순년간(咸淳年間; 1265~1274)에 문과에 장원, 송이 망하고 원이 되어서는 은거불사하고, 만고서적(萬古書籍)을 박람(博覽)하고 고금을 관통한 유학자였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문헌(文獻)’의 의미는, 옛 경사(經史) 전적의 기록을 인용한 것을 ‘문(文)’이라 하고, 당송(唐宋) 이래 여러 관료들의 주소(奏疏)와 학자들의 의논(議論)을 모아서 ‘헌(獻)'이라 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통전』을 따르면서, 현재는 전하지 않는 『송조국사(宋朝國史)』나 『송회요(宋會要)』 등 여러 사료를 널리 참고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통전』보다 훨씬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이 『송사(宋史)』의 각 지(志)에도 빠져 있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고, 그 외 다른 책에는 보이지 않는 기사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송나라 제도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의 내용 중 경적고는 학자들에게 해당 서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학문적 소양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고자 편찬된 것으로, 그 안에는 경서 및 역대 사서로부터 서목집과 제가들의 의론 및 문집, 시집에 이르기까지 각종 다양한 전거자료가 인용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숭문총목』 과 『군재독서지』ㆍ『직재서록해제』 가 주로 인용되었는데, 이들 인용방식을 통해, 『문헌통고』가 현존하지 않는 자료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점과 당시 어떠한 판본을 저본으로 경적고를 저술해 나간 것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통고』는 이미 고려 말에는 국내에 유입되어, 상당한 권위를 지닌 서적으로 인식되었고, 이후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왕실 및 지식인 계층에서 각종 제도를 상고하고 지식기반을 확충하는 자료로서 매우 활발하게 이용되었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어떤 학자는 이 책의 ‘동이총서(東夷總序)’에서 “‘동이(東夷)’는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이(夷)란 쭈그리고 앉는다는 뜻으로 예의가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夷)란 나무의 뿌리라는 뜻으로, 어질어서 살아 있는 사물을 소중하게 여기므로, 만물이 땅에 뿌리 밖고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夷)는 천성이 유순하여, 도리로써 다스리기 쉽다고 한다. 이(夷)는 9종이 있으니, 견이(畎夷)ㆍ방이(方夷)ㆍ황이(黃夷)ㆍ백이(白夷)ㆍ적이(赤夷)ㆍ현이(玄夷)ㆍ풍이(風夷)ㆍ양이(陽夷)ㆍ우이(于夷)이다. 모두 토착(土着)으로서,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혹은 머리에 고깔을 쓰고 비단옷을 입으며, 그릇은 조두(俎豆)를 사용하였으니, 이른바 중국이 예(禮)를 잃으면 이를 사이(四夷)에게서 구했던 것이다. 대저 만(蠻)ㆍ이(夷)ㆍ융(戎)ㆍ적(狄)을 이(夷)로 통칭(通稱)한 것은 중국의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을 죄다 제후(諸侯)로 부른 것과 같다 할 것이다.”라는 부분을 인용하여,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도 한다.

참고문헌

  • 김소희, 「『문헌통고』 경적고의 서지학적 가치에 관한 재고: 경부 인용문헌 분석을 통해」, 『서지학보』 제33호, 한국서지학회, 2009.
  • 남종진, 「중국 남북조시기 외래악무의 중원 전래와 수용」, 『동양예술』 제28호, 한국동양예술학회, 2015.
  • 손태룡, 「『조선왕조실록』의 문헌적 검토: 「율려신서」ㆍ「문헌통고」ㆍ「악기」를 중심으로」, 『음악과 민족』 18, 민족음악학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