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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7 기준 최신판



저자 권근(權近, 1352~1409)의 아들인 권도(權蹈)가 부친의 글을 모아 편찬한 시문집.

개설

『양촌집(陽村集)』은 저자 권근(權近, 1352~1409)의 아들인 권도(權蹈)가 부친의 글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간행자와 초간본의 정확한 간행연대는 불분명하다. 다만 권수의 『양촌선생영가권씨세계도(陽村先生永嘉權氏世系圖)』에 실려 있는 저자의 네 아들의 당시 관직명을 통해 세종대에 편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판은 세종 초년에 처음 간행되었는데, 이후 여러 차례 복각(覆刻)되어, 현재 여러 종류의 판본이 남아 있다.

편찬/발간 경위

저자 권근(權近, 1352~1409)의 아들인 권도(權蹈)가 부친의 글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간행자와 초간본의 정확한 간행연대는 불분명하다. 다만 권수의 『양촌선생영가권씨세계도(陽村先生永嘉權氏世系圖)』에 실려 있는 저자의 네 아들의 당시 관직명을 통해 세종 대에 편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판은 세종 초년에 처음 간행되었는데, 이후 여러 차례 복각(覆刻)되어, 현재 여러 종류의 판본이 남아 있다.

서지 사항

40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3.0cm, 가로 15.0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근은 이색(李穡)의 문인으로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스승과 행동을 같이하였으나, 조선 건국 후에 태조의 부름을 받고 출사(出仕)하였다. 시문(詩文) 가운데 「계룡일송(鷄龍一頌)」에서는 왕조의 개국을 칭송하였고, 「환왕정릉신도비병서(桓王定陵神道碑幷序)」에서는 고려의 국운이 공민왕에서 끊어졌고, 창왕 이후는 왕씨(王氏)가 아니라 하였는데, 이는 후인들에게 곡필(曲筆)이라는 평을 받았다.

「응제시(應制詩)」 24편은 그가 1396년(태조 5) 표전(表箋) 문제로 명나라와의 외교가 어려워졌을 때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 황제에게 지어 올린 것으로, 중국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여기에는 특히 단군(檀君) 설화가 언급되어 있어 주목된다.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은 고구려ㆍ백제ㆍ신라 3국의 사실(史實) 가운데 문제시되는 사건을 뽑아 자신의 비평을 서술한 사론집이고, 「동현사략(東賢事略)」은 허공(許珙)ㆍ김방경(金方慶) 등 고려 후기의 명현 24명의 간략한 사적을 적은 전기집이다.

권근(權近)은 고려 말인 1352년(공민왕 1)에 출생하여, 조선 초인 1409년(태종 9)에 타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ㆍ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ㆍ소오자(小烏子)이다.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친명 정책을 주장한 대표적인 신진사대부였다. 조선 개국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조선 개국을 찬송하는 노래를 태조에게 바치며 새 왕조에 출사하였다.

이후 명나라와의 외교적 사명을 완수하고, 사병 혁파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태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져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하면서, 조선왕조의 각종 제도 정비에 이바지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경학에 밝아 왕명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을 정하기도 하였다. 유학 제조를 겸하면서 유생 교육에 힘쓰고, ‘권학사목(勸學事目)’을 지어 올려, 조선 초기의 교육 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성리학 입문서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하여, 조선시대 성리학 심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저자는 조선 최초의 문형(文衡)으로서 활약하여, 많은 표전ㆍ소(疏)ㆍ계(啓)ㆍ차(箚)ㆍ서(序) 등을 남겼는데, 문학ㆍ의학ㆍ지리학ㆍ인쇄술ㆍ학교ㆍ향토ㆍ문화재 등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양촌집』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수에는 1674년에 쓴 허목의 중간서(重刊序)와 목록ㆍ연보 및 명나라 태조(太祖)의 응제시(御製詩) 세 수가 실려 있다. 권1에는 응제시 31수가 실려 있는데, 1396년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황제의 명으로 지은 24수와 귀국 후 조선 건국을 찬미하여 지어 올린 ‘천감ㆍ화산ㆍ신묘시’ 등 7수이다.

권2~4에는 55수의 시가 시체에 관계없이 실려 있고, 권5는 ‘점마행록’으로, 1387년 4월 12일에 서북면에서 말을 점고하라는 명을 받고, 다음날 서울을 떠나 평양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도중에서 지은 시 및 1388년 서도에 종군할 때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권6은 ‘봉사록’으로 1389년 사명을 받들고 중국에 갔을 때 거쳐간 지역과 눈으로 본 일을 시로 읊은 것으로, 여기에는 중국의 번성함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 권7에는 ‘남행록’과 몇 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남행록’은 1389년 겨울에 언사로 우봉에 유배되고, 이어 영해로 이배되었다가, 1390년 5월에 청주옥에 갇힌 뒤 석방되고, 이어 대간의 논박으로 또 다시 익주에 유배되고 겨울에 석방되어, 양촌으로 돌아온 뒤 이듬해까지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남행록’에는 자야선생강호문의 시 3수가 첨부되어 있다.

권8에는 정도전의 시에 차운하여 무산일단운체로 지은 ‘신도팔경’ 8수를 비롯하여, 107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9에는 중국 사신들인 육옹ㆍ단목례ㆍ장근과 수창하고 그들을 전송하는 시를 포함하여 98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10에는 말년에 지은 시 117수가 실려 있고, 말미에 호정하윤의 시 6수가 첨부되어 있다.

권9~10은 시, 권11~14에는 기 45편, 권15~20에는 서 66편, 권21에는 설 13편ㆍ전 3편, 권22에는 발어(跋語) 21편, 권23에는 명(銘) 7편ㆍ찬(贊) 8편ㆍ제문 13편, 권24에는 사대표전(事大表箋) 21편ㆍ본조표문(本朝表文) 16편, 권25에는 본조전문(本朝箋文) 12편ㆍ불윤비답(不允批答) 2편이 실려 있다.

권26에는 사직전(辭職箋) 1편ㆍ불윤비답 1편ㆍ차자 3편ㆍ계본 1편, 권27~28에는 소어(疏語) 23편, 권29에는 청사(靑詞) 14편, 권30에는 교서 9편, 권31~32에는 상서 12편, 권33에는 잡저 7편ㆍ책제 6편이 실려 있다. 권34에는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 권35에는 ‘동현사략(東賢事略)’, 권36~38에는 비명 8편, 권39~40에는 비명 1편ㆍ묘지 1편ㆍ행장 1편이 실려 있다.

권34의 ‘동국사략론’은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의 역사 사실 가운데에서 28칙을 택하여, 저자의 의견을 붙인 사론이며, 권35의 ‘동현사략’은 허공(許珙)ㆍ김방경(金方慶) 등 고려시대 인물 24인의 행적을 기록한 간단한 전기(傳記) 자료이다.

참고문헌

  • 박천규, 「양촌집」, 『민족문화』 제5집, 한국고전번역원, 1979.
  • 류형근, 「고려 목탑지 기단부의 구성과 특성」, 『동악미술사학』 제15호, 동악미술사학회, 2013.
  • 음성군, 『음성군지』, 음성군지편찬위원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