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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3 기준 최신판




정유재란 때에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의 무장.

개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이천상은 흠의천총(欽依千摠)의 신분으로 수병 2,700인을 이끌고 참전했다. 노량 전투에서 공을 세워 유격(遊擊)으로 승진하였다. 1600년 10월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가계

활동 사항

정유재란 때 유격 허국위(許國威)·참장 왕원(王元)과 주파(周把)·유격 계금(季金)·심무(沈懋)·복일승(福日昇)·양천윤(楊天胤)·장양상(張良相) 등과 함께 진린(陳璘)의 지휘를 받았다. 이천상은 날래고 용맹했으며 수전(水戰)에 능하였다. 처음에는 천총(千摠)으로 나와서 노량 싸움에서 일본군 269명을 베고 사로잡혀 갔던 사람 300여 명을 귀환시켰으므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유격으로 승진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그가 탐욕스러우며 포악하고, 조선 사람을 몰래 싣고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뜻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면서 비난하였다(『선조실록』 32년 윤4월 6일)(『선조실록』 32년 10월 2일).

참고문헌

  •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 이민웅, 「조·명 연합함대의 형성과 노량해전 경과」, 『역사학보』178, 역사학회,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