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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6 기준 최신판



양인 남성 중 16세부터 60세까지의 장정임에도 불구하고 역을 지지 않는 자.

개설

한유(閑遊)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역을 지지 않고 ‘한가로이 놀고 있는 자’를 가리켰다. 조선초기의 한량은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켰다. 조선후기에는 무예를 수련하여서 군관에 임명할 수 있는 자들을 의미하였다. 양역변통(良役變通) 당시에는 양역 예비자인 양정으로 아직 군역을 지지 않는 상황, 또는 그런 자들을 가리켰다.

내용 및 특징

한유층은 17~18세기 군역제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군역의 결원을 채우기 위하여 양정을 확보할 때에 ‘양정(良丁)의 한유자’로 자주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미 조선초기부터 의미가 약간 다르게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때는 향리의 사역을 ‘향역(鄕役)’으로 국역화(國役化)하는 과정에서 1~2년만 역을 지고 일체의 잡역을 면제받아 ‘한가로이 놀고 있는’ 것을 의미하였다(『세종실록』 7년 4월 1일). 한편 군관 및 시위패(侍衛牌)와 같은 상층 군사가 훈련이나 번을 잠시 서고 평상시에 한유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2년 8월 2일).

일반 군역자에 대해서도 한유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가 있었다. 본래 군정(軍丁)군적(軍籍) 상에 정해진 숫자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적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군적에 군역자의 수[元額]가 많게 기재되어서 한 사람이 여러 역(役)을 겸하게 되고, 사람이 많은 지역은 반대로 군적에서 빠진 누호(漏戶)나 여정(餘丁), 한유(閑遊)한 이가 많았다(『세조실록』 2년 2월 14일). 정유재란이 일어난 해에는 한유하는 출신(出身)·군관 등을 색출하여 오위(五衛)에 소속시켜 숙위(宿衛)케 하기도 하였다(『선조실록』 30년 4월 17일).

조선전기에 한유는 일반 군병보다 상층의 무리들이 역을 지지 않는 상황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량과 용법상 관련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변천

한량은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켰다. 이들은 주로 사족의 자제였다. 이들이 군역에 편제되기도 하였다. 사족 자제로서 경제력이 있으면서 무예를 수련하는 자들에게 일정한 시험을 거쳐 갑사(甲士)직을 제수하였던 것이다. 중종대부터는 그들에게 무과 응시를 허용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무예를 잘하여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량무학(閑良武學)’이라는 군관 직역도 있었다.

반면 한유는 양역변통 과정에서는 교생과 같은 양반자제를 ‘한유를 오래한 자’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단순히 ‘무역한유(無役閒遊)’, ‘양정의 한유’로 군역으로부터 빠져 있는 양인 남정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각사수교(各司受敎)』
  • 『수교집록(受敎輯錄)』
  • 이준구, 「朝鮮後期의 閑良과 그 地位」, 『국사관논총』 5, 국사편찬위원회,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