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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4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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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평전 |
한글표제 | 평전 |
한자표제 | 平田 |
상위어 | 전제(田制) |
동의어 | 정전(正田) |
관련어 | 양전(量田), 결부제(結負制), 산전(山田), 속전(續田) |
분야 | 경제/재정/전세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강제훈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평전(平田) |
산전과 대비되는, 평지에 위치한 일반적인 경작지.
개설
조선은 모든 경작지 면적을 결부제(結負制)로 평가하였다. 결부제는 같은 생산량을 내는 토지를 같은 면적으로 파악하는 평가 방식이었다. 때문에 비옥한 토지에 비해서 척박한 토지는 절대 면적에서 비옥한 토지에 비해서 몇 배나 넓었다. 정부는 토지를 파악할 때 기본적으로 평전과 산전을 먼저 구분하고, 평전을 수세에 관한 국가 제도 수립의 기준으로 삼았다.
내용
조선에서는 모든 경작지를 양전(量田)하여 결부제로 평가한 뒤 양안(量案)에 기록하였다. 결부제란, 1결에서 나오는 소출을 같게 맞추기 위하여 비옥한 땅은 짧은 자[尺]로 1결을 재고, 황폐한 땅은 긴 자로 1결을 재서 황폐한 땅의 1결이 비옥한 땅의 1결보다 넓게 측정하는 제도였다. 이처럼 결부제 하에서는 서로 다른 면적의 토지라도 양안 상에 1결로 파악되면 동일한 세금을 납부하였다. 그런데 토지의 면적 산정에서 중요한 것은 각 토지의 토질과 수원(水源)의 유무, 배수의 유무 등이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토지를 등급화하고 각 등급의 기준이 되는 자를 가지고 경작지의 면적을 측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결부제 산정에 앞서 먼저 고려되는 요소가 바로 해당 토지가 산전인가 평전인가 하는 점이었다. 조선은 산지가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많은 경작지가 산비탈이나 산 정상에 위치하였고, 이러한 토지를 산전(山田)이라 하였다. 반면 평지에 위치한 경작지는 평전(平田)이라고 지칭하였다. 일단 해당 토지가 평전으로 인정되면 양안 작성 시에 정전(正田)으로 평가되어 양안에 기재되었다. 반면 산전의 경우 속전(續田)으로 평가되어 기재되었다.
평전은 산전에 비하여 산출이 우세한 토지였다. 때문에 비옥도에 따라 토지 등급을 3등급 내지는 6등급으로 매기는 것은 평전만을 그 대상으로 하였고, 산전은 평전의 최하등급의 토지와 비교하여 그 경작 여건을 평가하여 결부를 산정해 주었다. 보통 산전 1결(結)의 절대 면적은 평전 최하등급 1결 토지 넓이의 몇 배수가 되도록 하였다. 조선초에는 이러한 토지 등급을 ‘갑(甲)’이라는 단위로 표현하였다. 즉, 산결 2갑전은 평전 최하등급 1결에 비하여 2배의 넓이가 되는 산전 1결을 의미하며, 3갑전·4갑전 역시 3배·4배만큼의 평전 넓이를 1결로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평전은 산전에 비하여 진황(陳荒) 여부나 손실분 인정에서 불리한 토지였다. 1466년(세종 27년)에 공법(貢法) 도입이 결정되었는데, 공법에서는 평전에서의 진황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평전으로 등록된 토지의 경우 매해 농사를 지어야 했으며, 평전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더라도 그해 풍흉 정도에 따라 부과되는 세액을 부담해야만 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강제훈, 『조선 초기 전세 제도 연구: 답험법에서 공법 세제로의 전환』,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