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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3 기준 최신판



지역 출신으로 학덕이 있는 인물.

개설

향선생(鄕先生)은 지역 출신의 학덕이 있는 인물로, 죽은 후에 지역의 후진들에 의하여 향사(享祀), 곧 제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말한다.

변천

1489년(성종 20) 예조(禮曹)에서는 해주향교(海州鄕校)에서 최충(崔沖)·최유신(崔惟善)이, 김제향교(金堤鄕校)에서 조간(趙簡)이 문묘 종사되고 있는데, 고례(古例)에 의하면 향선생을 위해 따로 사당을 세워 제사하는 경우는 있으나 문묘에 종사되는 예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최충·최유신·조간의 문묘 종사를 폐지하자고 건의하자 성종은 의정부 등과 의논하라고 하였다(『성종실록』 20년 7월 11일). 논의 결과 향선생을 문묘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론 내렸다(『성종실록』 20년 10월 25일).

이후 정몽주, 김굉필 등의 문묘 종사 논의 과정에서, 향선생을 고을에서 제사지내는 것은 고례(古例)가 있다면서 문묘가 아닌 향사(鄕社)에서 향선생을 모시는 것이 장려되었다(『중종실록』 12년 8월 20일). 그리고 각 고을에 서원이 남설(濫設)되면서 향선생은 각 고을에서 모셔지게 되었다. 광주에서는 고경명의 사우(祠宇)에 편액을 하사하고 향사할 것을 요청하였고[『선조실록』 5월 11일 7번째기사], 효종대 이후에는 사우의 남설로 인한 폐단을 논의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효종실록』 8년 6월 21일) (『현종개수실록』 1년 5월 9일).

참고문헌

  • 정만조, 『조선시대 서원 연구』, 집문당, 1997.
  • 김미영, 「서원 향사(享祀)의 변화와 사회 문화적 의미: ‘도산서원’ 사례를 중심으로」, 『국학연구』22, 2013.
  • 정재훈, 「조선시대 서원의 발전과 지역적 특징: 도산서원과 석실서원」, 『안동학연구』11,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