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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0 기준 최신판



자기 자신의 도덕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학문.

개설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자신의 도덕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로서,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상대되는 말이다. 공자가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을 하였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爲人之學]을 한다."고 하였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이에 대해 정이천은 위기지학은 자신뿐 아니라 남을 이루어주는 데 비해, 위인지학은 남에게 인정받는 학문을 하여 끝내는 자신을 상실하는 데 이른다고 하여 위기지학을 중시하였다.

내용 및 특징

위기지학은 사림들이 중앙 정계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한 성종대부터 강조되었다. 김종직은 이익을 꾀하는 것은 위기지학이 아니라고 하였고(『성종실록』 14년 11월 12일), 중종대에 대사헌민제인은 위기지학에 힘써 경솔하고 과격한 버릇을 억제하자고 하였다.

명종대 말에 사림들의 정계 진출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위기지학에 힘쓴 인물에 대한 평가가 두드러졌다. 예컨대 이황은 어렸을 때부터 선현의 위기지학에 뜻을 두어 마음으로 생각하고 힘써 실천하여 뜻을 맑게 가지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였다고(『명종실록』 21년 6월 15일) 칭송되었다. 선조대에는 기묘사화 이후 선비들이 위기지학에 뜻을 두고 은거하여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아 도학이 끊어지지 않은 덕분에 명종 말과 선조 초에 선비들이 성대하게 정계에 진출하였다고 평가되었다(『선조수정실록』 12년 12월 1일). 이후 조선조에서는 선비를 평할 때에 위기지학을 하였는가가 기준이 되었다. 성혼(成渾), 정엽(鄭曄), 윤증(尹拯), 박세채(朴世采), 한원진(韓元震) 등이 모두 위기지학에 힘쓴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왕조실록』에서 거론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박영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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