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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7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나 외국 사절의 방문 때 군중(軍中)에서 상관의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보던 군사.

내용

미리 특정한 군사들로 편성되었던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대부분 임시로 정해졌다. 국왕이 행차했을 때에는 훈련도감군(訓鍊都監軍)을 그 규모에 맞게 뽑아서 배치하였다. 온천 등의 이유로 멀리 나갔을 경우에는 그 지방의 속오군을 동원하였는데 장교 1명, 군졸 5명으로 정했다가 1784년(정종 8)에 2명을 줄였다. 중국의 사신 등이 왔을 때에는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에서 교대로 병조의 지시를 기다려 거행하도록 했다. 대궐문 밖에서 추모현(追慕峴)까지 경군(京軍) 30명과 지방군 100명이 당(塘)을 구획하여 서서 대기하였다. 사절이 남별궁에 들어간 뒤에 문 밖의 군을 문 안으로 철수시켜 증파하였다. 1799년(정조 23)에 왕의 명령으로 모화관(慕華館)의 남북 작문(作門)은 금위영에서 하도록 정해졌다.

용례

政院啓曰 館所時無緊事 今夜傳語軍 亦依去夜姑罷 而此後依此擧行乎 上曰 如無緊事 每日黃昏後姑罷(『현종실록』 6년 11월 27일)

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金鍾洙, 『朝鮮後期 中央軍制硏究』, 혜안,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