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竹島)"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문서 내용을 "*죽도(울릉도) *죽도(통영)"으로 바꿈)
 
1번째 줄: 1번째 줄:
 
+
*[[죽도(울릉도)]]
 
+
*[[죽도(통영)]]
{{지명|대표표제=죽도|한글표제=죽도|한자표제=竹島|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임진왜란(壬辰倭亂), 통영(統營), 한산도(閑山島)|분야=정치/군사·국방/전쟁|유형=지명|지역=대한민국|시대=|왕대=|집필자=허지은|이칭=|관할지역=|형성시기=|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825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312010_006 『세종실록』 13년 12월 10일],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906020_005 『선조실록』 29년 6월 20일]}}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에 딸린 섬.
 
 
 
=='''개설'''==
 
 
 
동경 128도 32분, 북위 34도 43분에 위치한다. 면적은 0.67㎢이고, 해안선 길이는 3.0㎞이다.
 
 
 
=='''명칭 유래'''==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에 본영을 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함선(艦船)들이 무기 제조에 필요한 대나무를 이곳에서 베어 사용하면서 죽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 환경'''==
 
 
 
섬은 동서 방향으로 길며, 타원형의 구릉성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 높이는 128m다. 북쪽 해안은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선박이 쉽게 정박할 수 있다. 반면에 나머지 해안은 깎아 세운 듯한 해식애가 발달해 있으며, 수심은 30m에 이른다.
 
 
 
=='''위치 비정'''==
 
 
 
통영(統營)에서 동남쪽으로 15㎞, 한산도에서 동남쪽으로 3㎞ 지점에 있다.
 
 
 
=='''관련 기록'''==
 
 
 
1431년(세종 13)에 죽도의 서쪽 바다에서 해적을 토벌한 제주 사람 천호(千戶)김석(金石) 등 8명에게 쌀을 내려주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312010_006 『세종실록』 13년 12월 10일]).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은 조선의 남부 해안 지역에 왜성을 쌓고 병력을 주둔시켜두었다. 죽도에는 일본군 제2군의 장수인 과도직무(鍋島直茂) 부자가 주둔하였다. 이들은 강화교섭 기간 중 다수의 일본군이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전쟁 기간 내내 죽도에 주둔하였다.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이전인 1596년(선조 29)에 조선 국왕이 대신과 비변사 당상(堂上)을 인견했을 때 죽도에 왜적이 가장 성한 것과 안골(安骨)·가덕(加德)·부산 등에도 영진(營陣)이 있는 것에 대해 묻고 이에 대해 유성룡(柳成龍)이 죽도에 왜적이 가장 많다고 답변한 기록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2906020_005 『선조실록』 29년 6월 20일]).
 
 
 
=='''관계망'''==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8251"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분류:정치]][[분류:군사·국방]][[분류:전쟁]][[분류:지명]][[분류:대한민국]]
 

2018년 1월 24일 (수) 22:29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