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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년 ()나라의 양사영(陽士瀛)이 지은 의학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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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년(남송 경정 5)에 송나라 양사영이 지은 의학서.
  
 
=='''개설'''==
 
=='''개설'''==
  
『직지방(直指方)』은 중국 송(宋) 나라의 이종(理宗) 때인 1264년에 양사영이 지은 의학서적으로, 원래의 이름은 『인재직지방(仁齎直指方)』이다. 교정은 첨중(詹中)이 하였는데, 모두 26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에 『본초찬도(本草纂圖)』ㆍ『득효방(得效方)』ㆍ『화제지남(和劑指南)』 등의 서책들과 함께 의가(醫家)의 근본으로 여겨질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세조(世祖) 때에는 정ㆍ종8품에 해당하는 의원(醫員)을 취재(取才)할 때 강(講)하는 의학 서적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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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방(直指方)』은 송(宋)나라 양사영(楊士灜)지은 의학서였다. 『인재직지방론(仁齋直指方論)』 혹은 『인재직지』라고 부르지만 그냥 ‘직지방’이라 통칭할 정도로 널리 쓰였다. 1264년(남송 경정 5)에 저술되었으며, 국내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조선시대에 줄곧 의과 고강서(醫科考講書)로 널리 사용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편찬/발간 경위'''==
  
1431년(세종 13) 5월 『직지방(直指方)』과 함께 『상한류서(傷寒類書)』, 『의방집성(醫方集成)』, 『보주동인경(補註銅人經)』을 전의감(典醫監) 생도들의 습독서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중국 원서(唐本)가 1책 밖에 없으므로, 『직지방』과 『상한류서』·『의방집서』는 주자소에서 각각 50부 씩 인출하고, 그림이 있어 간행하기 어려운 『보주동인경』은 경상도에 보내 목판으로 새겨 찍어 보급하도록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305011_007 『세종실록』 13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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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영이 지은 ‘인재직지방’은 ‘직지방’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였다. 우선 이 책은 저술 시기가 1264년(남송 경정 5)으로, 1262년(남송 경정 3)에 지은 『인재직지방론의맥진경』이 두 해 먼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분량의 많고 적음으로 인하여 ‘의맥진경’이 ‘직지방’에서 맥론만을 발췌하여 엮었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은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외에도 송나라 양사영이 지은 『인재상한유서활인총괄(仁齋傷寒類書活人總括)』(7권), 『인재직지소아방론(仁齋直指小兒方論)』(5권), 『인재직지부유방론(仁齋直指附遺方論)(26권) 등이 있었다. 이 책들은 훗날 그의 호를 집어넣어 ‘인재직지의서사종(仁齋直指醫書四種)’으로 합편하여 두루 쓰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훗날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전체 내용이 실릴 정도로 중국에서도 비중 있는 의방서로 손꼽혔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의원들을 교육하는 데 사용했던 맥학 교과서이자, 진맥만을 전문으로 논술한 맥학서이다. 일명 ‘의맥진경(醫脈眞經)’ 혹은 ‘의학진경(醫學眞經)’이라고도 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0년(세종 12)에 이미 의학취재고강서(醫學取才考講書)로 『찬도맥(纂圖脈)』과 함께 『직지방』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기록으로 보아 이 책은 적어도 고려말엽 이전에 이미 입수되어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널리 읽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3018_002 『세종실록』 12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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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총목제요』에 보면 원래 저자는 서명을 ‘인재직지’라 하였는데, 나중에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주숭정(朱崇正)이 보완하여 『인재직지부유방론』으로 편집할 때 매 조문마다 ‘부유(附遺)’라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서지 사항'''==
 
=='''서지 사항'''==
  
총 26권 6책으로 되어 있으며, 주자소에서 간행하였다. 책 크기는 세로 32.8cm, 가로 21.8cm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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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년(세종 13) 5월의 기사에는 『직지방』과 함께 『상한류서(傷寒類書)』·『의방집성(醫方集成)』·『보주동인경(補註銅人經)』으로 전의감(典醫監) 생도들의 습독서(習讀書)를 삼으려 하나 중국 원서를 의미하는 당본(唐本)이 1책밖에 없으므로 앞의 세 가지는 주자소에서 각각 50부씩 인출하고, 『보주동인경』은 그림이 있어 함께 간행하기 어려우므로 경상도에 보내어 목판으로 새겨 찍게 하였다고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판본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규장각 소장본뿐이다. 본서의 판면은 9행 16자로 이루어진 목활자본 1책으로 활자는 『동의보감』 초간본과 마찬가지로 훈련도감활자이다. 전체는 총 37장 혹은 38장으로 알려져 있다. 판심은 위ㆍ아래에 꽃잎이 안쪽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직지맥』이라고 표기한 판심제와 판수가 매 장마다 들어 있다. 현전본은 앞쪽이 떨어져 나가 본문 셋째 장부터 남아 있으며, 서발(序跋)이나 간기(刊記)는 찾아볼 없다. 하지만 원래는 앞쪽에 저자의 서문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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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조선 판본은 매우 드물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조선초기 간본인 영본(零本) 5책이 소장되어 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광해군대 훈련도감자로 인쇄한 『인재직지방론의맥진경』 1권이 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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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일본을 방문하여 중국의 진기한 희귀본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연구한 양수경(楊守敬)의 『일본방서지보유(日本訪書誌補遺)』에는 송원본(宋元本)과 『의방유취(醫方類聚)』에 수록된 내용이 다소 다르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조선에서 이 책과 진자명(陳自明)의 『부인대전양방(婦人大全良方)』을 같이 찍었기 때문에 활자와 판형이 동일하다고 밝혀 놓았다. 대개 역사상 유명한 의학서 중 많은 책이 조선간본을 바탕으로 보존되고 전승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있다. 원서에 ‘환계서원간행(環溪書院刊行)’이라 밝힌 것은 송판본의 간행처이며 조선 활자본과 체제가 같다고 하였다.
  
 
=='''구성/내용'''==
 
=='''구성/내용'''==
  
책의 저자 양사영은 송나라의 회안인(懷安人)으로 자()는 등부(登父), 호는 인재(仁齋)이다. 그는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 18명의 덕의(德醫)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올라 있을 정도로 의술이 뛰어나고, 인덕(仁德)을 베푼 의사였다. 그의 저서는 이 책 외에도 『인재상한류활인총괄(仁齋傷寒類書活人總括)』, 『인재직지소아방론(仁齋直指小兒方論)』, 『인재직지부유방론(仁齋直指附遺方論)』 등이 있다. 이 책들은 훗날 그의 호를 집어넣어 『인재직지의서사종(仁齋直指醫書四種)』으로 간행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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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내과잡병의 증치(證治) 총론을 위주로 서술한 임상의서였다. 조선에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배송(背誦)하도록 되어 있고, 『속대전(續大典)』에 고강서(考講書)로 올라 500여 년간 의학 교과서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한 비중 있는 책이었다. 현재 송참(宋槧) 원간본은 찾아볼 수 없으며,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주숭정(朱崇正)이 보유하여 펴낸 것이 『사고전서』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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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유취』의 「인용제서」에 보면 이 책과 함께 『인재소아방(仁齋指小兒方)』·『직지맥결(直指脈訣)』·『상한류서(傷寒類書)』라는 책이 연이어 등재되어 있다.(등재되었다.) 또 『직지방』과 『상한유서활인총괄(傷寒類書活人總括)』·『인재소아방론(仁齋小兒方論)』을 ‘양인재(楊仁齋) 저작 3종’이라 하였는데, 조선전기에 많이 사용된 『직지소아방』은 바로 이 『인재소아방론』을 말하였다. 『직지방』은 『의방유취』 91문 중 65문에 걸쳐 등장할 정도로 많이 인용되었으며, 『직지소아방』 역시 소아문에 대거 인용되었다. 이 소아방론에는 어린아이의 태독(胎毒)에 주사나 수은 같은 맹독성 약재의 사용을 반대하는 등 당시로서는 드문 견해를 제시하여 후세 소아과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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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양사영은 『의학진경(醫學眞經)』·『찰맥총괄(察脈總括)』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직지맥결(直指脈訣)’이란 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예문고(藝文考)」·「의가류(醫家類)」에 보면 『의맥진경(醫脈眞經)』 1권이란 기록이 보이는데 이것은 『의학진경』을 말하는 것이다.
  
『직지방』으로 통칭되는 『인재직지방』은 1264년에 지은 것으로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주승정(朱崇正)이 보완하여, 『인재직지부유방론(仁齋直指附遺方論)(26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이 책과 유사한 서명으로 『인재직지방방맥론(仁齋直指方脈論)』이란 책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송이전의적고(宋以前醫籍考)』에서는 『의방유취』 인용서에 들어있는 『직지맥결(直指脈訣)』을 이 책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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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양사영에 대한 평가도 역시 책만큼이나 매우 호평을 받았다. 『의림촬요(醫林撮要)』「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서 그는 역대 18명의 덕의(德醫) 가운데(중) 한 사람으로 올라 있었다. 여기에 실린 그의 전()에는 “송() 삼산(三山)의 명의(名醫)로 제인이물위심(濟人利物爲心)하였다. …”는 매우 간략한 평만 실려 있었다. 그가 분류된 덕의란 명의(明醫)·세의(世醫) 중에 덕이 있는 자로 규정되었다. 명의란 이른바 의학의 이치에 밝은 자이고, 세의란 업의(業醫)로서 누대로 의업을 이어받아 뛰어난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니, 결국 그는 의술도 뛰어나고 인덕을 베푼 훌륭한 의사의 전형으로 뽑힌 것이었다.
  
한편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직지(直指)』로 통칭하여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출전을 밝히고 있다. 책명인 『직지』와 관련하여 저자의 자서(自序)에서 “명백하여 알기 쉬운 것을 직(直)이라 하고, 자취를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을 지(指)라고 한다(明白易曉之謂直, 發종以示之爲指).”라고 밝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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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영은 대대로 인술을 행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뛰어난 의술을 보였다고 하였다. 의사로서 어떤 덕행(德行)을 베풀었는지는 자세한 사적이 전하지 않지만 그가 집필한 많은 의서가 수백 년을 두고 쓰였으니 당대에 몇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에 비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읠 내용은 크게 「찰맥총괄(察脈摠括)」과 「맥결(脈訣)」로 이루어져 있다. 「찰맥총괄」 편에는 「삼부구후론(三部九候論), 「장부부위론(臟腑部位論)」, 「진후론(診候論)」, 「맥병소식론(脈病消息論)」, 「맥병순역론(脈病順逆論)」 등이 들어 있다. 「맥결(脈訣)」 편은 ‘맥결(脈訣)의 종(宗)’이라 부르는 숙화(叔和)의 설을 경(經)으로 하고, 전고(前古)의 서적에서 채취한 백가(百家)의 설을 위(緯)로 하여 요지를 밝힌 것이다. 세부항목으로 「장부정위(臟腑定位)」, 「칠표맥결(七表脈訣)」, 「팔리맥상(八裏脈狀)」, 「칠표주병(七表主病)」, 「팔리주병(八裏主病)」, 「칠표맥(七表脈)과 각 병증(病證)」, 「팔리맥(八裏脈)과 각 병증」, 「구도맥(九道脈)과 각 증상(證狀)」, 「오장(五臟)의 제맥증(諸脈證)과 오장평맥(五臟平脈)」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 실제 임상에서 병증을 가리기 위해 「병맥(病脈)의 순역(順逆)」, 「비위유맥(脾胃有脈)」, 「음양맥증순역(陰陽脈證順逆)」, 「온한하맥법(溫汗下脈法)」, 「유잉무잉맥(有孕無孕脈)」, 「태부맥(胎婦脈)」 등의 항목이 빠지지 않고 들어 있다. 끝으로 「오장소주(五臟所主)와 장부병(臟腑病)」, 「허실증(虛實證)」, 「찰색청성(察色聽聲)」, 「심몽(審夢)」, 「논수맥(論水脈)」, 「논절맥(論絶脈)」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요약된 골자가 골고루 열거되어 있어 학습에 매우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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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서(自序)에서 서명인 ‘직지(直指)’를 ‘환하고 쉽게 깨달을 수 있으며, 전철(前哲)의 자취를 드러내어 보여 준다[明白易曉之謂直, 發踪以示之謂指]’는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이 책은 단순하고 명료한 치법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본초의방류(本草醫方類)로 분류되었다.
  
항목 중에 「맥병역순론(脈病逆順論)」 아래에는 ‘견직지방(見直指方)一권내(卷內)’라는 주석이 달려있어, 애초에 이것이 직지방론서와 함께 참조하여, 응용할 수 있도록 꾸며졌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가운데 “칠표팔리구도(七表八裏九道)의 맥상은 모두가 24기(氣)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라고 적혀 있어 사람의 맥상이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변화에 부응하여, 달라지는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또 저자는 ‘진후론(診候論)’의 말미에 왕숙화(王叔和)의 말을 빌려, “마음으로 느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손가락 끝으로 누르는 것만으로는 환히 알기 어렵다.”는 말로 진맥의 어려운 경지와 고도의 숙련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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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에서 금·원·명·청에 이르기까지 역대 의가들의 임상 참고서로서 중요시되었으며, 조선왕조 내내 의과 고시 과목에 들어 있던 교과서였다. 또 『동의보감』 등 역대 조선 의서에도 빠지지 않고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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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세조실록(世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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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구암선생 손끝 여민 처방서-『新刊仁齋直指方論』」, 『고의서산책』 241회, 민족의학신문, 2005.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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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不動의 의과고시 과목-『仁齋直指方』」, 『고의서산책』 58회, 민족의학신문, 2001.       
*신동원, 『조선의학생활사』, 도서출판 들녘,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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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손끝에 마음을 매달아-『新刊仁齋直指方論醫脈眞經』」, 『고의서산책』 235회, 민족의학신문, 2005.      
*안상우, 「의서산책241:新刊仁齋直指方論」, 『민족의학신문』508, 민족의학신문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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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위, 「基于《仁斋直指方论》的杨士瀛学术思想研究」, 중국중의과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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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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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56 기준 최신판



1264년(남송 경정 5)에 송나라 양사영이 지은 의학서.

개설

『직지방(直指方)』은 송(宋)나라 양사영(楊士灜)이 지은 의학서였다. 『인재직지방론(仁齋直指方論)』 혹은 『인재직지』라고 부르지만 그냥 ‘직지방’이라 통칭할 정도로 널리 쓰였다. 1264년(남송 경정 5)에 저술되었으며, 국내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조선시대에 줄곧 의과 고강서(醫科考講書)로 널리 사용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양사영이 지은 ‘인재직지방’은 ‘직지방’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였다. 우선 이 책은 저술 시기가 1264년(남송 경정 5)으로, 1262년(남송 경정 3)에 지은 『인재직지방론의맥진경』이 두 해 먼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분량의 많고 적음으로 인하여 ‘의맥진경’이 ‘직지방’에서 맥론만을 발췌하여 엮었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은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외에도 송나라 양사영이 지은 『인재상한유서활인총괄(仁齋傷寒類書活人總括)』(7권), 『인재직지소아방론(仁齋直指小兒方論)』(5권), 『인재직지부유방론(仁齋直指附遺方論)』(26권) 등이 있었다. 이 책들은 훗날 그의 호를 집어넣어 ‘인재직지의서사종(仁齋直指醫書四種)’으로 합편하여 두루 쓰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훗날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전체 내용이 실릴 정도로 중국에서도 비중 있는 의방서로 손꼽혔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 보면 원래 저자는 서명을 ‘인재직지’라 하였는데, 나중에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주숭정(朱崇正)이 보완하여 『인재직지부유방론』으로 편집할 때 매 조문마다 ‘부유(附遺)’라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서지 사항

1431년(세종 13) 5월의 기사에는 『직지방』과 함께 『상한류서(傷寒類書)』·『의방집성(醫方集成)』·『보주동인경(補註銅人經)』으로 전의감(典醫監) 생도들의 습독서(習讀書)를 삼으려 하나 중국 원서를 의미하는 당본(唐本)이 1책밖에 없으므로 앞의 세 가지는 주자소에서 각각 50부씩 인출하고, 『보주동인경』은 그림이 있어 함께 간행하기 어려우므로 경상도에 보내어 목판으로 새겨 찍게 하였다고 되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판본은 매우 드물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조선초기 간본인 영본(零本) 5책이 소장되어 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광해군대 훈련도감자로 인쇄한 『인재직지방론의맥진경』 1권이 전할 뿐이었다.

근세 일본을 방문하여 중국의 진기한 희귀본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연구한 양수경(楊守敬)의 『일본방서지보유(日本訪書誌補遺)』에는 송원본(宋元本)과 『의방유취(醫方類聚)』에 수록된 내용이 다소 다르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조선에서 이 책과 진자명(陳自明)의 『부인대전양방(婦人大全良方)』을 같이 찍었기 때문에 활자와 판형이 동일하다고 밝혀 놓았다. 대개 역사상 유명한 의학서 중 많은 책이 조선간본을 바탕으로 보존되고 전승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원서에 ‘환계서원간행(環溪書院刊行)’이라 밝힌 것은 송판본의 간행처이며 조선 활자본과 체제가 같다고 하였다.

구성/내용

이 책은 내과잡병의 증치(證治) 총론을 위주로 서술한 임상의서였다. 조선에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배송(背誦)하도록 되어 있고, 『속대전(續大典)』에 고강서(考講書)로 올라 500여 년간 의학 교과서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한 비중 있는 책이었다. 현재 송참(宋槧) 원간본은 찾아볼 수 없으며,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주숭정(朱崇正)이 보유하여 펴낸 것이 『사고전서』에 수록되었다.

『의방유취』의 「인용제서」에 보면 이 책과 함께 『인재소아방(仁齋指小兒方)』·『직지맥결(直指脈訣)』·『상한류서(傷寒類書)』라는 책이 연이어 등재되어 있다.(등재되었다.) 또 『직지방』과 『상한유서활인총괄(傷寒類書活人總括)』·『인재소아방론(仁齋小兒方論)』을 ‘양인재(楊仁齋) 저작 3종’이라 하였는데, 조선전기에 많이 사용된 『직지소아방』은 바로 이 『인재소아방론』을 말하였다. 『직지방』은 『의방유취』 91문 중 65문에 걸쳐 등장할 정도로 많이 인용되었으며, 『직지소아방』 역시 소아문에 대거 인용되었다. 이 소아방론에는 어린아이의 태독(胎毒)에 주사나 수은 같은 맹독성 약재의 사용을 반대하는 등 당시로서는 드문 견해를 제시하여 후세 소아과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양사영은 『의학진경(醫學眞經)』·『찰맥총괄(察脈總括)』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직지맥결(直指脈訣)’이란 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예문고(藝文考)」·「의가류(醫家類)」에 보면 『의맥진경(醫脈眞經)』 1권이란 기록이 보이는데 이것은 『의학진경』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 양사영에 대한 평가도 역시 책만큼이나 매우 호평을 받았다. 『의림촬요(醫林撮要)』「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서 그는 역대 18명의 덕의(德醫) 가운데(중) 한 사람으로 올라 있었다. 여기에 실린 그의 전(傳)에는 “송(宋) 삼산(三山)의 명의(名醫)로 제인이물위심(濟人利物爲心)하였다. …”는 매우 간략한 평만 실려 있었다. 그가 분류된 덕의란 명의(明醫)·세의(世醫) 중에 덕이 있는 자로 규정되었다. 명의란 이른바 의학의 이치에 밝은 자이고, 세의란 업의(業醫)로서 누대로 의업을 이어받아 뛰어난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니, 결국 그는 의술도 뛰어나고 인덕을 베푼 훌륭한 의사의 전형으로 뽑힌 것이었다.

양사영은 대대로 인술을 행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뛰어난 의술을 보였다고 하였다. 의사로서 어떤 덕행(德行)을 베풀었는지는 자세한 사적이 전하지 않지만 그가 집필한 많은 의서가 수백 년을 두고 쓰였으니 당대에 몇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에 비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서명인 ‘직지(直指)’를 ‘환하고 쉽게 깨달을 수 있으며, 전철(前哲)의 자취를 드러내어 보여 준다[明白易曉之謂直, 發踪以示之謂指]’는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이 책은 단순하고 명료한 치법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본초의방류(本草醫方類)로 분류되었다.

이 책은 중국에서 금·원·명·청에 이르기까지 역대 의가들의 임상 참고서로서 중요시되었으며, 조선왕조 내내 의과 고시 과목에 들어 있던 교과서였다. 또 『동의보감』 등 역대 조선 의서에도 빠지지 않고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 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 안상우, 「구암선생 손끝 여민 처방서-『新刊仁齋直指方論』」, 『고의서산책』 241회, 민족의학신문, 2005.
  • 안상우, 「不動의 의과고시 과목-『仁齋直指方』」, 『고의서산책』 58회, 민족의학신문, 2001.
  • 안상우, 「손끝에 마음을 매달아-『新刊仁齋直指方論醫脈眞經』」, 『고의서산책』 235회, 민족의학신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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