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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용어|대표표제=공법회통|한글표제=공법회통|한자표제=公法會通|대역어=|상위어=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하위어=|동의어=『공법천장(公法千章)』, 『문명국들의 근대 국제법(Das moderne Volkerrecht der Civilisierten Staten)』|관련어=방국(邦國), 블룬칠리(Johannes. C. Bluntschli), 윌리암 마틴(William A. P. Martin), 이경직(李庚稙), 정위량(丁韙良)|분야=교육·출판/출판/서책|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후기~대한제국기|왕대=|집필자=정욱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97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09025_003 『고종실록』 34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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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전|대표표제=공법회통|한글표제=공법회통|한자표제=公法會通|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국제법서|유형=한문|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고종|집필자=성낙수|저편자=Johannes C. Bluntschli|간행처=학부 편집국|간행년일=1896|권책수=10권 3책|사용활자=|표제=|소장처=규장각 등|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123|실록연계=}}
  
1880년에 윌리암 마틴이 블룬칠리의 『문명국들의 근대 국제법』을 한문으로 번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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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인 선교사 마틴(Wi11am A1exander Parsons Martin, 1827∼1916)이 블룬츨리(B1untsch1i J. C.)의 『현대국제법』을 한문으로 번역한 책.
  
 
=='''개설'''==
 
=='''개설'''==
  
고종은 황제에 즉위한 후 1899년(광무 3)에 대한제국 국제(國制) 9개 조를 선포하였는데 그 용어와 체제는 『공법회통(公法會通)』에 기초하였다. 『공법회통』은 독일어가 원본이며 한문,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용되던 책이다. 이에 고종도 그 체제를 이용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위스 출신의 요한 블룬칠리(Johann Kasper Bluntschli)이며 한문으로 번역한 것은 청나라 주재 선교사 윌리엄 알렉산더 파슨스 마틴(William Alexande Pasons Matin), 중국명 정위량(丁韙良)이다. 블룬칠리는 독일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하였고, 1836년부터 취리히 대학에서 법학교수를 지냈으며, 1860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와 바덴의 의원을 겸하였다. 1868년에 『문명국들의 근대 국제법(Das moderne Volkerrecht der Civilisierten Staten)』을 간행하였다. 그는 국제법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국제법의 적용 지역이 유럽을 벗어나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기독교 대신에 문명이란 척도를 사용해 국제법이 문명국들의 법임을 강조하였다. 이 책은 서문과 862개의 명제가 9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법천장(公法千章)』이라고도 불렸다. 윌리엄 마틴은 선교사였으나 청나라가 유럽 국가와 국제적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근대적 법 체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하에 『만국공법』을 번역하였다. 그는 1881년 6월에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블룬칠리와 만나 『공법회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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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세기에 미국인 선교사 마틴(Martin)이 한역한 하네스 카스파르 블룬츨리(Johannes Caspar Bluntschli)의 서양국제법서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서양법학서 『공법회통(公法會通)』은 1896년 학부(學部)에서 청국판(淸國板)에 편집국장 이경식의 서문을 붙여 출판하였고, 고종과 대신들에게 배포하여, 1899년 대한제국 국제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국제법상 주권국가간의 평등, 군민공치(君民共治) 등 국민주권주의적 공법사상을 담고 있다.
  
조선에서도 개항 이후 『공법회통』이 유럽의 국제법 체제를 이해할 수 있는 책임을 알고 있었다. 특히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 군주제 성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한제국 선포를 앞둔 1897년(광무 1) 9월 25일에 농상공부(農商工部) 협판(協辦)권재형(權在衡)은 『공법회통』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황제 칭호를 사용해야 제국(帝國)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09025_003 『고종실록』 34년 9월 25일]). 그런데 권재형이 인용한 『공법회통』의 제84~86장에서는 국력에 대응하지 않는 황제 칭호 사용은 부정하였다. 특히 블룬칠리의 원전에서는 세계적인 권력을 보유하거나 여러 국민을 통치하는 국가만이 황제를 칭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권재형은 원전이나 번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1905년(광무 9) 11월 26일 시강원 시강(侍講)박제황(朴齊璜)의 상소에서도 나타난다. 박제황은 『공법회통』의 제405~406장을 예로 들면서, 조약을 의논하여 이루었고 서명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조약을 반드시 준행할 의무는 없으며 그 군왕의 비준을 반드시 기다려 준행해야 한다고 했다. 박제황의 주장은 을사보호조약이 국제법상 무효이며 파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법회통』에서는 전권(全權)이 없는 자가 체결한 조약의 효력을 논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공법 체제의 본질을 인지하지 못한 관료들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이면서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복속되어 가던 대한제국 지배층의 모순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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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발간 경위'''==
  
=='''내용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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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역자인 선교사 마틴은 뉴욕대학 출신으로, 22세 때인 1849년 선교사로 중국에 갔다. 그리고 중국 청(淸)나라의 동문관총교습(同文館總敎習)으로 초빙되어, 중국에서 67년 동안 동서 문화교류에 앞장섰다. 그는 『공법회통』 외에도 휘튼(Wheaton M.)의 국제법 서적인 『E1ement of Internationa1 Law』를 『만국공법(萬國公法)』으로 번역하였다. 『만국공법』은 동양 각국에 공법사상(公法思想)을 전파하였으며,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책의 한국판은 1895년(고종 32)에 나왔으며 학부편집국장인 이경직(李庚稙)이 서문을 지었다. 그는 제환공(齊桓公) 때부터 국가의 교류는 신뢰로 예를 갖추는 것이 공법이라고 하였다. 블룬칠리는 보륜(步倫)으로 명명되었는데 그의 주장은 보국선린(保國善隣)의 도라고 칭하였다. 또한 조선이 외국과의 교류가 없어서 외교가 고루하였는데 고종의 명으로 세계 각국과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책은 관료에서 일반 서민까지 두루 읽혀 개명(開明)으로 나가는 발판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 책의 범례에도 공법은 세계 각국이 준수하는 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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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법회통』의 원저자인 블룬츨리(B1untseh1i)는 스위스의 법학자이며 사학자로, 하이델베르크대학의 교수였다. 책은 조선에도 전해져, 1895년(고종 32) 학부(學部) 편집국(編輯局)에서 간행되었다. 『만국공법』에 이어 『공법회통』이 전래ㆍ간행되면서, 공법사상은 조선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목차는 이경직, 왕문소(王文韶), 정위량의 서문과 범례 및 연표 그리고 10권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연표는 중국 한, 진(晉), 수, 당, 송, 남송, 원, 명, 청 등의 원년을 서기년도와 연결시킨 것이다. 한나라는 평제의 원년으로 서기 0년이다. 청나라는 순치 원년(1644)부터 청 황제들의 원년을 광서제까지 연결시켰다. 10권은 속집이며 말미에 정오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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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사항'''==
  
권1은 논공법지원류급방국지권위(論公法之源流及邦國之權位)로 제1~114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16장은 논공법지기강(論公法之紀綱), 제17~61장은 논공법소할자(論公法所轄者), 제62~94장은 방국자주지국(邦國自主之國), 제95~114장은 논제국균세이보대국(論諸國均勢以保大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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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ㆍ활자본이다. 세로 29.7cm, 가로 19.2cm이고, 지질은 한지이며,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2는 논대국이행(論代國而行)으로 제115~275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15~134장은 논국주대국지권(論國主代國之權), 제135~153장은 논국주공사등유력우방(論國主公使等遊歷友邦), 제154~158장은 논국척(論國戚), 제159~169장은 논방국교제지책(論邦國交際之責), 제170~240장은 논방국통사지례(論邦國通使之例), 제241~275장은 논위원영사등직(論委員領事等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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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내용'''==
  
권3은 논할지지권(論轄地之權)으로 제276~359장으로 구성되었다. 제276~295장은 논득지실지지례(論得地失地之例), 제296~303장은 논정계지례(論定界之例), 제304~352장은 논강하호해통용지례(論江河湖海通用之例), 제353~359장은 논세계지례(論世系之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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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법사상은 1897년 ‘광무(光武)’ 연호를 정하고, 황제 존호(尊號) 사용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농상공부협판(農商工部協辦)최재형(權在衡)은 『공법회통』을 조목조목 인용하여, 국제공법상 자주국가로서 마땅히 황제를 칭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3책(천ㆍ지ㆍ인)으로 되어 있으며, 학부편집국장(學部編輯局長)이경식(李庚植)의 서(序)와 왕문소(王文詔)의 서(序)(1880), 마틴의 서(), 범례(凡例)까지 21개 조항이 붙어 있다.
  
권4는 논할인지권(論轄人之權)으로 제360~401장으로 구성되었다. 제360~363장은 논금노지례(論禁奴之例), 제364~374장은 논정적지례(論定籍之例), 제375~380장은 논인민교거이방이앙뢰본국보호지례(論人民僑居異邦而仰賴本國保護之例), 제381~393장은 논보호객민지례(論保護客民之例), 제394~401장은 논교출도범지례(論交出逃犯之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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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책 중 제1책에는 서문‚ 범례‚ 연표‚ 목록‚ 권1~2의 내용이‚ 제2책에는 권3~권7의 내용이‚ 제3책에는 권8~권10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각 책의 끝부분에는 정오표(正誤表)를 첨부하여, 오자(誤字)들을 수정하였다. 서문은 3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는, 1896년 5월 9일 이 책을 간행할 때 학부(學部) 편집국장(編輯局長)이경식(李庚稙)이 지은 서문이고‚ 나머지 두 편은 1880년 청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될 때 왕문소(王文韶)와 역자인 정위량(丁韙良)이 지은 것이다. 정위량은 서문에서 『공법회통』의 ‘공법’은 제국(諸國)의 통례를 말하는 것이며, ‘회통(會通)’은 조목별로 나누고, 사건 별로 다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또 법의 근원은 첫째 천리자연(天理自然)에서 나온 것이며, 둘째 회의상약(會議相約)에서 나와 명문(明文)으로 된 것이며, 셋째 오랫동안 관습처럼 인정되어 온 것이라고 하였다.  범례는 공법의 정의‚ 편찬원칙 등을 밝힌 글로서‚ 총 21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표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연도와 서기 연도를 비교해 놓았는데, 한나라부터 명나라까지는 각국의 건국원년과 그에 해당하는 서기 연도를 기록하였고‚ 청나라의 경우는 모든 황제의 원년과 그에 해당하는 서기 연도를 기록하였다. 목록에는 권1부터 권10까지의 목차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의 총 10권 중 권1부터 권9까지는 블룬출리의 원전을 862장으로 분류하여 번역해 놓은 것이고‚ 권10은 원전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미국행군훈계(美國行軍訓戒)」를 번역한 것인데, 총 157장으로 분류되어 있다.
  
권5는 조약(條約)으로 제402~461장으로 구성되었다. 제402~416장은 논준약지책(論遵約之責), 제417~424장은 논조약각식(論條約各式), 제425~441장은 논보약필준지례(論保約必遵之例), 제442~449장은 논합맹논등략(論合盟論等約), 제450~461장은 논폐약지례(論廢約之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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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권6은 논방국계흔개인위배공법(論邦國啓釁皆因違背公法)으로 제462~509장으로 구성되었다. 제462~480장은 논간예타국내정지례(論干預他國內政之例), 제481~498장은 논조처공안지례(論調處公案之例), 제499~509장은 논미전이세핍지례(論未戰而勢逼之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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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휘튼, 울시의 책들과 함께 중국과 일본에서 재간되었지만, 특히 한국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고종은 직접 한문 번역서를 읽고 대신들에게도 이 책을 공부하라고 지시했으며, 김익로나 권재형, 김재현, 박제황, 윤병수, 최재학, 조병세 등 수많은 사람들의 상소문이 『공법회통』을 인용하였다. 특히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최초의 서양 법학서인 것은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도 이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만든 것이다. 이러한 서구적 공법사상과 이론의 도입은 동양의 전통적 유교사상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권7은 논방국교전(論邦國交戰)으로 제510~663장으로 구성되었다. 제510~528장은 논교전연유(論交戰緣由), 제529~536장은 논전시사의(論戰時事宜), 제537~556장은 논적국필준지권책(論敵國必遵之權責), 제557~567장은 논교전위례지사(論交戰違例之事), 제568~626장은 논관대적국병민지례(論寬待敵國兵民之例), 제627~643장은 논처치도병간세기반역지례(論處治逃兵奸細曁叛逆之例), 제644~663장은 논육전처치적화지례(論陸戰處置敵貨之例)이다.
 
 
 
권8은 논방국수전(論邦國水戰)으로 제664~741장으로 구성되었다. 제664~699장은 논수전처치적화지례(論水戰處置敵貨之例), 제700~726장은 논전필입약지례(論戰必立約之例), 제727~741장은 논실물복귀지례(論失物復歸之例)이다.
 
 
 
권9는 논국외지권책(論國外之權責)으로 제742~862장으로 구성되었다. 제742~797장은 논방국수국외지권리(論邦國守局外之權利)로 제798~826장은 논사험국외선화지례(論査驗局外船貨之例), 제827~862장은 논봉도적국구안지례(論封堵敵國口岸之例)이다.
 
 
 
권10은 원서작위속권전재미국행군훈계(原書作爲續卷專載美國行軍訓戒)로 제1~157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30장은 논교전권의지례(論交戰權宜之例), 제31~47장은 논처치적국공산사산이급금지손해적국인민등례(論處置敵國公産私産以及禁止損害敵國人民等例), 제48~80장은 논징벌도병금획인물이급교질등례(論懲罰逃兵擒獲人物以及交質等例), 제81~85장은 논처치불안례조전인민지례(論處置不按例助戰人民之例), 제86~104장은 논급여호조이급처치매국간세등례(論給與護照以及處治賣國奸細等例), 제105~118장은 논호역부로이급집백기통왕래등례(論互易俘虜以及執白旗通往來等例), 제119~134장은 논빙신석방지례(論憑信釋放之例), 제135~147장은 논정병이급패항등례(論停兵以及敗降等例), 제148장은 논행흉지위례(論行凶之違例), 제149~157장은 논처치분쟁반역지례(論處置分爭叛逆之例)이다.
 
 
 
=='''변천'''==
 
 
 
1910년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공법 이론의 근간은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며 국제 조약은 일방적인 힘으로 파기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공법은 대한제국을 이른바 국제법으로 예속화시키는 법적 도구가 되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선본해제』9,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 2007.       
*『일성록(日省錄)』     
+
*서울대학교출판부,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 서울대출판부, 1981.       
*국사편찬위원회, 『대한계년사』, 1971.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임경석·김영수·이항준, 『한국근대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2012.     
 
*한국학문헌연구소 편, 『影印 公法會通』, 아세아문화사, 1981.       
 
*한국학문헌연구소 편, 『影印 萬國公法』, 아세아문화사, 1981.       
 
*이광린, 「韓國에 있어서의 萬國公法의 受容과 그 影響」, 『東亞硏究』1 , 1982.       
 
  
[[분류:교육·출판]][[분류:출판]][[분류:서책]][[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후기~대한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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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제법서]][[분류:한문]][[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고종]]

2017년 12월 22일 (금) 01:18 판



19세기 미국인 선교사 마틴(Wi11am A1exander Parsons Martin, 1827∼1916)이 블룬츨리(B1untsch1i J. C.)의 『현대국제법』을 한문으로 번역한 책.

개설

이 책은 19세기에 미국인 선교사 마틴(Martin)이 한역한 하네스 카스파르 블룬츨리(Johannes Caspar Bluntschli)의 서양국제법서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서양법학서 『공법회통(公法會通)』은 1896년 학부(學部)에서 청국판(淸國板)에 편집국장 이경식의 서문을 붙여 출판하였고, 고종과 대신들에게 배포하여, 1899년 대한제국 국제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국제법상 주권국가간의 평등, 군민공치(君民共治) 등 국민주권주의적 공법사상을 담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역자인 선교사 마틴은 뉴욕대학 출신으로, 22세 때인 1849년 선교사로 중국에 갔다. 그리고 중국 청(淸)나라의 동문관총교습(同文館總敎習)으로 초빙되어, 중국에서 67년 동안 동서 문화교류에 앞장섰다. 그는 『공법회통』 외에도 휘튼(Wheaton M.)의 국제법 서적인 『E1ement of Internationa1 Law』를 『만국공법(萬國公法)』으로 번역하였다. 『만국공법』은 동양 각국에 공법사상(公法思想)을 전파하였으며,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공법회통』의 원저자인 블룬츨리(B1untseh1i)는 스위스의 법학자이며 사학자로, 하이델베르크대학의 교수였다. 이 책은 조선에도 전해져, 1895년(고종 32) 학부(學部) 편집국(編輯局)에서 간행되었다. 『만국공법』에 이어 『공법회통』이 전래ㆍ간행되면서, 공법사상은 조선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서지 사항

10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ㆍ활자본이다. 세로 29.7cm, 가로 19.2cm이고, 지질은 한지이며,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공법사상은 1897년 ‘광무(光武)’ 연호를 정하고, 황제 존호(尊號) 사용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농상공부협판(農商工部協辦)최재형(權在衡)은 『공법회통』을 조목조목 인용하여, 국제공법상 자주국가로서 마땅히 황제를 칭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3책(천ㆍ지ㆍ인)으로 되어 있으며, 학부편집국장(學部編輯局長)이경식(李庚植)의 서(序)와 왕문소(王文詔)의 서(序)(1880), 마틴의 서(序), 범례(凡例)까지 21개 조항이 붙어 있다.

총 3책 중 제1책에는 서문‚ 범례‚ 연표‚ 목록‚ 권1~2의 내용이‚ 제2책에는 권3~권7의 내용이‚ 제3책에는 권8~권10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각 책의 끝부분에는 정오표(正誤表)를 첨부하여, 오자(誤字)들을 수정하였다. 서문은 3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는, 1896년 5월 9일 이 책을 간행할 때 학부(學部) 편집국장(編輯局長)이경식(李庚稙)이 지은 서문이고‚ 나머지 두 편은 1880년 청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될 때 왕문소(王文韶)와 역자인 정위량(丁韙良)이 지은 것이다. 정위량은 서문에서 『공법회통』의 ‘공법’은 제국(諸國)의 통례를 말하는 것이며, ‘회통(會通)’은 조목별로 나누고, 사건 별로 다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또 법의 근원은 첫째 천리자연(天理自然)에서 나온 것이며, 둘째 회의상약(會議相約)에서 나와 명문(明文)으로 된 것이며, 셋째 오랫동안 관습처럼 인정되어 온 것이라고 하였다. 범례는 공법의 정의‚ 편찬원칙 등을 밝힌 글로서‚ 총 21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표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연도와 서기 연도를 비교해 놓았는데, 한나라부터 명나라까지는 각국의 건국원년과 그에 해당하는 서기 연도를 기록하였고‚ 청나라의 경우는 모든 황제의 원년과 그에 해당하는 서기 연도를 기록하였다. 목록에는 권1부터 권10까지의 목차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의 총 10권 중 권1부터 권9까지는 블룬출리의 원전을 862장으로 분류하여 번역해 놓은 것이고‚ 권10은 원전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미국행군훈계(美國行軍訓戒)」를 번역한 것인데, 총 157장으로 분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휘튼, 울시의 책들과 함께 중국과 일본에서 재간되었지만, 특히 한국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고종은 직접 한문 번역서를 읽고 대신들에게도 이 책을 공부하라고 지시했으며, 김익로나 권재형, 김재현, 박제황, 윤병수, 최재학, 조병세 등 수많은 사람들의 상소문이 『공법회통』을 인용하였다. 특히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최초의 서양 법학서인 것은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도 이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만든 것이다. 이러한 서구적 공법사상과 이론의 도입은 동양의 전통적 유교사상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참고문헌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선본해제』9,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 2007.
  • 서울대학교출판부,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 서울대출판부, 1981.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