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정(天然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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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지에 있던 정자로 문인들이 노닐던 장소.

개설

1741년(영조 17) 영조 때 도성 서쪽 문 밖에 연못이 있었는데, 이 근처에 천연정(天然亭)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관원들이 드나들며 연회를 즐겼다. 연못은 규모가 상당하였으며, 연꽃을 식재하여 정자에서 내다보는 경관이 일품이었다.

위치 및 용도

천연정은 돈의문(敦義門) 밖 서지(西池) 가에 세운 정자로서 시인 묵객들이 노닐던 곳이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에 속한다. 천연정은 무악재를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기 위한 연회장이었다. 후에 경기중군영(京畿中軍營)이 공사관으로 쓰이면서 경기중군영의 부속 건물로도 사용되었다.

변천 및 현황

모화루(慕華樓) 남쪽에 연못을 파게 하고 숭교사(崇敎寺)의 연못에서 연을 옮겨 심어 서지를 조성하였다(『태종실록』 8년 5월 19일). 본래 이해중(李海重)의 개인 서재이자 별장으로 조성하여 천연정이라 불렀으며, 연꽃이 무성해 도성 안 사람들이 연꽃을 구경하러 가던 곳이었다.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 천연정 근처에는 경기중군영이 설립되었으나, 일본의 침략으로 1880년(고종 17)에 일본공사관으로 사용되었으며 청수관(淸水館)이라 불렀다. 청수관은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 또한 서지는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매립되어 죽첨보통학교가 들어섰다가, 1929년에 현재의 금화초등학교가 세워졌다.

형태

천연정은 한쪽 면은 일반 초석, 반대편은 장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운 누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이다. 측면형 정자로 ‘ㄱ’자형이며 팔작지붕 형태였다.

관련사건 및 일화

현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天然洞)은 1914년 4월 1일 경기도 행정구역 구획을 정할 때 처음 생긴 이름이다. 이 지역에 예부터 있던 천연정이란 정자에서 연유한다.

참고문헌

  • 『완당집(阮堂集)』
  • 『한경지략(漢京識略)』
  • 『동아일보(東亞日報)』, 1976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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