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鄭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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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63년(세조 9) = ?]. 조선 초기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 집현전(集賢殿)교리(校理)와 진천현감(鎭川縣監) 등을 지냈다. 호는 죽계(竹溪)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아버지는 정효순(鄭孝恂)이고, 어머니 강화 최씨(江華崔氏)는 최숭(崔崇)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고려 때 감무(監務)를 지낸 정회(鄭澮)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때 지서주사(知西州事)를 지낸 정수도(鄭修道)이다.

세종~세조 때의 활동

1432년(세종 14) 식년시(式年試)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였다.[『방목(榜目)』] 1440년(세종 22)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이 되었고, 1447년(세종 29)에는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을 거쳐 1448년(세종 30)에는 집현전 교리와 집현전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청선고(淸選考)』],(『세종실록(世宗實錄)』 29년 2월 16일),(『세종실록』 30년 5월 9일),(『세종실록』 30년 5월 15일)

단종(端宗)이 왕위에 오른 후 정치의 혼란을 예견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진천현감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이후 성균관(成均館)직강(直講)에도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다가 1463년(세조 9) 세상을 떠났다.

한편 단종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사육신(死六臣) 및 단종과 관련된 충신들을 모신 동학사(東鶴寺)에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후손

첫 번째 부인 영천 이씨(永川李氏)는 예조 판서(判書)를 지낸 이응(李膺)의 딸인데, 후사를 두지 못하였다. 두 번째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공조 참의(參議)를 지낸 이점(李漸)의 딸로 자녀는 2남 1녀를 두었다. 1남 정백원(鄭伯元)은 선무랑(宣務郞)이었으며, 2남 정중원(鄭仲元)은 현감(縣監)을 지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장집략(誌狀輯略)』
  • 전주대학교, 초계정씨 문과 인맥도, http://kr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