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혜(丁情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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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97년(정조 21)~1839년(헌종 5) = 43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헌종(憲宗) 때의 천주교도로,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엘리사벳.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거주지는 경기도 광주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와 서울이다. 아버지는 정약종(丁若鍾)이고, 어머니는 유항고(柳恒故)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정지해(丁志諧)이다. 정약용(丁若鏞)과 정약전(丁若銓)의 조카이기도 하다.

순조~헌종 시대 활동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정정혜(丁情惠)는 4살 때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모든 가족이 체포되었으나 아버지 정약종(丁若鍾)과 이복 오빠 정철상(丁哲祥)만 순교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석방되어 아버지의 고향인 마재에서 살았다. 집안을 어렵게 만든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친족들로부터 곱지 않은 대우를 받는 등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 나갔으며, 어머니로부터 경문을 배워 열심히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기해일기(己亥日記)』]

이후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오빠 정하상(丁夏祥)이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자 어머니와 함께 이주하여 조선에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을 시중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1839년(헌종 5) 기해박해가 발발하였고, 그해 6월 9일 어머니와 오빠 정하상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았으나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함께 옥에 갇힌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였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중]

결국 정정혜는 그해 11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사망하였으니, 당시 그녀의 나이 43세였다.(『헌종실록(憲宗實錄)』 5년 11월 24일),[『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순조 5년 11월 24일] 1925년 7월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으며,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어 성인 반열에 올랐다.

성품과 일화

정정혜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녀는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를 믿어 집안을 망하게 만들었다며 냉대하고 구박하는 친척들에 대해서도 아름다운 덕행과 인내로 극복하여, 천주를 용서할 수 없다던 몇몇 친척들까지 입교시켰다. 정정혜는 혼인을 하지 않고 동정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30세쯤 되었을 때 2년 이상 대단히 강한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반발하는 육체를 끊임없는 극기와 대재(大齋)로 공격하고 주야로 예수께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아 마침내 완전한 동정생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기해일기』]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기해일기(己亥日記)』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10,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