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노(轉運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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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나 수참에 속하여 물자 운송을 신역으로 담당하던 노비.

개설

1416년(태종 16) 사사노비(寺社奴婢)를 혁파하면서, 이들을 주로 전농시(典農寺)에 소속시켰지만, 다른 관사에도 배치시켰다. 이 중 사재감 수군(司宰監水軍)으로 소속된 자들을 ‘전운노(轉運奴)’라고 불렀다. 기존의 사재감 수군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사재감은 운송 업무를 관장하였다. 전운노는 명칭 그대로 정부 소용의 물자를 운송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담당 직무

각 역이나 수참(水站)에 소속된 전운노들은 세곡(稅穀)이나 진상 물품의 운송 외에도, 사신의 왕래, 각종 토목공사에 필요한 물품의 운송 등을 담당하였다. 그들이 부담하는 역이 무거웠기 때문에 이들이 도망하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일정한 특혜를 주었다. 전운노들에게는 1명당 전(田) 50부(卜)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처자식과 같이 거주하도록 배려하고, 아울러 각종 요역이나 잡역을 일반 민호보다는 가볍게 부과하도록 규정하였다.

변천

원래 전운노들은 고려말의 절에 소속된 노비들을 혁파하여 사재감에 소속시킨 자들이었다. 조선 정부는 전운노의 일이 고역인 점을 감안해, 토지를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펴서 그들이 맡은 역에 충실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전운노의 처자들은 서로 다른 읍에 소속되어서 사역되었다. 이 때문에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폐단이 잦았고, 각종 잡역 등의 침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사재감에 소속된 이후 도망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후에는 정치적 모반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노비로서 역이나 수참 부근에 거주하는 자들을 전운노로 충당하거나, 무리를 이루어 도둑질한 자들을 소속시키기도 하였다. 이마저도 충분하지 않을 때는 공노비 중에서 역이나 수참 근처에 거주하는 자들을 뽑아 전운노로 삼기도 하였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