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류군(雜類軍)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초기 잡색군(雜色軍)의 별칭.

개설

조선초기 국방체제는 각 도의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있는 영(營)과 연해안 지대에 설치된 진(鎭)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여기에 영진군(營鎭軍)·수성군(守城軍) 등을 배치했으나, 대부분의 내륙 지방에는 군대가 없었다. 따라서 대규모의 적이 침입하면 내륙 지역을 무인지경으로 만들 우려가 많았다. 조선초기 정부는 이런 방어의 부실을 막기 위해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는 예비 병력의 조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세종 초에 이르러 정규 군역에 동원되지 않는 장정들을 묶어서 하나의 병종으로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강력하게 대두하였고, 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잡색군이 단일한 병종으로 수록되었다. 그 뒤 1439년(세종 21)에는 잡색군 편성을 정비하여, 특히 남방 각 도에서 영진군이 방비할 수 없는 지역에 적이 침입했을 경우 잡색군을 활용한다는 원칙이 정해졌다. 이어서 1441년(세종 23)에는 잡색군의 대상·편성 방식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규정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잡류군(雜類軍)은 이러한 잡색군의 별칭으로서 『중종실록』과 『선조실록』에서만 그 용례가 발견된다.

용례

司諫鄭萬鍾曰 兵曹行移 未知何以爲之也 雜類軍多數徵發 公私賤悉皆上來 至爲騷擾 此則下諭各道 勿發何如(『중종실록』 31년 8월 26일)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