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속군(翼屬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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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에 함길도에 배치한 익군(翼軍)의 명칭.

내용

조선초기에는 함길도에 소속된 익군을 익속군(翼屬軍)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조선초기 세종대에 이르러 평안도와 함길도 양도는 군익도체제(軍翼道體制)로 정비되었다. 군익도는 익군(翼軍)을 주 병종으로 삼아 다른 병종까지도 그 편제 속에 망라하는 군사단위로 도내의 군현이 모두 군익도에 소속되었다. 그런데 함길도 군익도에 소속된 익군을 익속군이라 하기도 하였다. 군익도는 행정과 군사가 일원화되어 양도의 모든 수령은 군익도의 군직(軍職)을 겸임했고 따라서 연변의 수령처럼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 임명되었다. 익군조직은 천호(千戶)·백호(百戶)·통주(統主) 등에 의해 관장되었고 그들이 통솔하는 병력 규모는 천호가 100호, 백호가 50호, 통주가 10호였다. 천호·백호·통주는 처음에는 세습직이었으나 후에는 임기가 정해졌다. 북방지역의 익군체제는 점차 중앙 집권력이 확립되면서 세조대에는 지방군제가 진관체제(鎭管體制)로 정비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익군의 지휘관도 중앙에서 파견하는 체제로 바뀌어갔다.

용례

領議政李稷 領敦寧柳廷顯 左議政李原 右議政趙涓 兵曹判書趙末生等議 (중략) 吉州以南各官翼屬軍二千九百八十四名 別牌四百六十八名 摠三千四百五十二名 分戍慶源·龍城二處 每月各一百五十名 議其遠邇 使之一年一赴防 若翼屬軍不足 則革不緊各浦船軍充數 慶源城 來秋 以石堅築 命如所議施行(『세종실록』 8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