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군(留鎭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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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국방상 중요한 지역인 진(鎭)에 머물러 지키던 군인.

내용

조선전기에 지방의 각 진에는 정병(正兵)들이 일정한 번차(番次)에 따라 머물러 지키고 있었다. 이들을 유방군(留防軍) 혹은 유진군(留鎭軍)이라 불렀다. 선군(船軍)을 제외한 양인 농민의 의무 군역을 정병이라 부른 것은 1459년(세조 5)의 병제 개편으로부터였다. 이전까지는 서울에 번상 시위하는 군사를 시위패(侍衛牌), 각 지방에서 근무하는 군사를 영진군(營鎭軍)·수성군(守城軍), 평안·함길도의 군사를 정군(正軍)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때부터 우선 평안·함길도의 정군과 그 이외 나머지 도의 시위패를 합쳐서 정병(正兵)이라 불렀다. 그리고 1464년(세조 10)에는 영진군과 수성군이 정병에 합속(合屬)되었다. 이렇게 하여 지방의 군사들은 모두 정병에 속하여 번상(番上)과 유방(留防)을 돌아가면서 하게 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병전(兵典) 번차도목(番次都目)에 의하면 번상정병(番上正兵)은 ‘8번(番) 2삭(朔) 상체(相遞)’로, 유방정병(留防正兵)은 ‘4번(番) 1삭(朔) 상체(相遞)’로 규정되어 있다. 즉 유진군들은 4번으로 나뉘어 4개월마다 1개월씩 돌아가면서 각 진에서 근무하도록 되어 있었다. 시위패 계열을 잇는 번상군과 영진군·수성군 계열을 잇는 유방군은 고정되어 각각 유방과 번상을 나누어 분담하기도 하고, 서로 교대하여 유방과 번상을 하는 등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게 된다.

용례

上因金世俊輪對 問防禦廳曰 開城府留鎭軍 只留一二旅 而餘皆上京立番 令南方軍士 除上番而留戍本道何如(『중종실록』 6년 4월 13일)

참고문헌

  • 閔賢九, 『朝鮮初期의 軍事制度와 政治』, 韓國硏究院, 1983.
  • 金鍾洙, 「16세기 甲士의 消滅과 正兵立役의 變化」, 『國史館論叢』 32, 1992.
  • 吳宗祿, 「朝鮮初期의 營鎭軍」, 『宋甲鎬敎授停年退任記念論文集』,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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