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절(元朝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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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를 기념하는 청나라의 절일.

개설

원조절은 정월 초하루인 정단(正旦)을 기념하는 절일로, 청나라 황제의 생일인 만수절(萬壽節)과 동짓날인 동지연절(冬至年節) 등과 함께 3대 기념일 중의 하나이다.

연원 및 변천

조선은 황제의 생일인 만수절과 동지연절 그리고 원조절에 모두 방물(方物)을 갖추어서 청에 보냈다(『정조실록』 9년 2월 14일). 정월 초하루를 축하해 조선에서 보내는 사신을 하정사(賀正使) 혹은 정조사(正朝使)라고 불렀는데, 성절과 정단 그리고 동지 등의 3대 절일에 파견하는 절사의 경우는 연중 특정 날짜에 맞추어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과 방물을 전달해야 했다. 숭덕 연간 조선의 대청 정기사행 파견은 성절과 정조 두 차례에 그쳤는데, 1644년(인조 22) 청의 입관과 북경 천도로 인하여 심양에서 북경으로 행선지가 바뀌었으므로, 정조행의 날짜에 변화가 생겼다. 입관 전인 1643년에는 11월 24일에 정조행이 있었다면, 입관 이후인 1644년에는 10월 24일에 한양을 출발하였던 것이다.

1644년 11월 19일에 청에서는 조선에 대하여 공물의 감축과 정조를 포함한 삼절을 같이 보내는 병공(倂貢)을 지시하는 칙유(勅諭)를 반포하였다. 이때 칙유에는 원조, 즉 정조사행 때에 병공하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1645년부터 매년 한 차례의 신년 초하루에 맞추어 북경에 도착하는 정기사행을 파견하여 삼절연공행의 의무를 처리하였다. 1645년의 첫 번째 삼절연공행은 9월 28일에 서울을 떠났는데, 정조에 맞추어 도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청실록(淸實錄)』에도 조선 사신의 입공 기사는 1646년 정월 초하루 조야에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연도기행(燕途紀行)』의 서문을 보면, 원조절에 참여하기 위하여 조선의 사행이 경인년인 1650년(인조 1)과 1651년 11월에 출발하였으며, 다음 해인 신묘년, 즉 1651년 3월에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1651년 11월에 출발한 사행이 다음 해인 임진년, 즉 1652년 3월에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이 당시 사행이 11월에 출발해 원조절에 참여한 다음, 그 이듬해 3월에 귀국하는 일정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연도기행(燕途紀行)』
  • 『동문휘고(同文彙考)』
  • 『청실록(淸實錄)』
  • 구범진, 「조선의 청 황제 성절 축하와 건륭 칠순 ‘진하 외교’」, 『한국문화』 6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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