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청(源義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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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실정막부 12대 장군.

개설

본명은 족리의청(足利義晴)이다. 실정막부의 장군인 족리씨는 조선과 통교 시에는 본성인 원(源)을 사용하였다. 의청은 11대 장군 족리의징(足利義澄)의 아들로 1511년 근강(近江) 강산성(岡山城)에서 태어났다. 관령 세천정원(細川政元)은 10대 장군 족리의직(足利義稙)을 쫓아내고 의징을 11대 장군에 올렸는데, 1507년 세천정원이 암살된 뒤 세천씨가 분열되자 망명 생활 중이던 의직이 반격하여 1508년 의징 세력을 경도에서 몰아내고 다시 장군직에 올랐다. 이에 대하여 의징도 장군직 탈환을 위해서 반격을 노렸지만, 의청이 태어난 약 5개월 뒤에 병사하였다. 그 후 의직과 의징 세력 간에 화의가 성립, 의청은 파마(播磨)의 영주 적송의촌(赤松義村)의 비호 하에 자랐다.

내용 및 특징

1521년 장군 족리의직이 세천고국(細川高國)의 전횡을 참지 못하고 경도(京都)를 떠나자 고국은 의직의 장군직을 폐하고 의청을 맞아들여 새로운 장군으로 옹립하였다. 고국은 새로운 장군의 거택을 조영하고 무운을 기원하는 등 의청을 우대하였다. 그런데 1526년 고국의 가신 사이의 분쟁으로 정국이 동요되고 이후 세천씨의 내분으로 확대되었다. 고국은 1527년 계천(桂川)의 싸움에서 세천청원(細川晴元)·삼호원장(三好元長) 등에게 대패하여 경도에서 밀려나 장군 의청과 함께 근강(近江)으로 도피하였다. 의청은 무전원광(武田元光) 등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천청원·삼호원장이 옹립한 족리의유(足利義維)와 대립하며 기내(畿內) 및 경도 탈환을 노렸지만, 1531년 세천고국이 세천청원과의 싸움에서 대패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그런데 세천청원·삼호원장 사이에서도 분열이 발생, 원장이 사망하자 1534년 의청은 청원과 화해하고 경도로 돌아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의청의 통제력에는 한계가 많았고 기내 지방의 정세는 불안정하였다. 이후 의청은 세천청원과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였고 그때마다 근강으로의 도피와 경도 복귀라는 형태를 반복하였다. 1549년 삼호원장의 아들 장경(長慶)이 대두해 세력을 확대하자 의청은 청원 등과 다시 근강으로 도망갔다. 의청은 이번에도 경도로의 귀환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그 이듬해인 1550년 근강에서 병사하였다.

활동 사항

의청의 장군 재직 기간(1521~1546년) 중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일본국왕사 파견은 총 9회로 그중 원의청의 이름은 1523년(중종 18), 1525년(중종 20), 1546년(명종 1)의 세 차례 나타난다(『중종실록』 18년 5월 25일)(『중종실록』 20년 4월 16일)(『명종실록』 1년 10월 2일). 이 기간 중의 일본국왕사들도 다른 시기 파견되었던 경우와 같이 대부분 대장경을 요청하였고 때때로 명과의 조공알선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가짜 사신인 위사(僞使)가 빈번하게 발생하던 때로 이 기간 중 파견되었던 일본국왕사를 전부 위사라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 당시 일본(막부)과 명의 공식 무역인 감합무역을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던 것은 대내씨와 세천씨였고 이들 사이에는 분쟁도 빈번하였는데, 특히 1523년 명의 영파(寧波)에서 양자의 사절단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영파의 난이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내용이 1525년의 기사에서 보인다. 기사의 내용에서는 “간사한 무리가 홍치(弘治)의 감합(勘合)”을 도둑질 했다면서, 명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조선의 알선을 요청하고 있는데, 홍치의 감합을 사용하였던 것은 세천씨였다.

참고문헌

  • 橋本 雄, 『中世日本の國際關係―東アジア通交圈と僞使問題』, 吉川弘文館, 2005.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石田晴男, 『應仁·文明の亂』(戰爭の日本史 9), 吉川弘文館, 2008.
  • 민덕기, 「실정막부의 대명조공(對明朝貢) 중재요청과 조선의 대응」, 『일본역사연구』 1, 일본사학회, 1995.
  • 신동규, 「<조선왕조실록> 속의 일본국왕사와 위사」, 『왜구 위사 문제와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5.
  • 한문종, 「조선전기 일본국왕사의 조선통교」, 『한일관계사연구』 21, 한일관계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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