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사(永安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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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북해공원 안에 있으며 뒤편에 백탑이 있는 사찰.

개설

영안사(永安寺)는 1651년(효종 2)에 세워진 백탑(白塔)으로 유명하다. 이 사찰은 당나라 정관 연간에 창건되어 도솔사(兜率寺), 수안선림(壽安禪林), 소효사(昭孝寺), 홍경사(洪慶寺) 등으로 불리다가 1482년에 영안사로 개명되었다.

내용 및 특징

(1) 절의 연혁

영안사는 중국 북경(北京) 고궁(故宮)과 경산(景山)의 북서측에 위치한 북해공원(北海公園) 안에 있다. 이 사찰은 당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창건되었다. 원래 이름은 도솔사였는데 1320년 원 영종(英宗)이 왕위를 계승하고 도솔사를 증축하면서 소효사로 개명하였다. 다시 홍경사라 바뀌었다가 1443년에 재건한 후 수안선림이라 칭하였다. 그 후 1482년에 지금의 사명(寺名)인 영안사(永安寺)로 개명하였다.

영안사 뒤쪽에 있는 경화도(瓊華島)의 정상에는 35.9m에 달하는 백탑이 우뚝 솟아 있다. 영안사 백탑은 1651년에 세워졌다. 이 탑은 1679년과 1731년의 지진에 의해 무너졌다가 다시 재건되었다. 탑신(塔身) 위에는 높다란 탑찰(塔刹)이 우뚝 솟아 있다. 기단부인 찰좌(刹座)는 작은 수미단의 형태를 하고 있고, 그 위에 십삼중상륜(十三重相輪)으로 이루어진 십삼천(十三天)의 가늘고 긴 찰신(刹身)이 있으며, 십삼천의 위에는 두 겹의 구리로 만든 화개(華盖)가 덮여 있다.

(2) 조선과의 인연

1794년(정조 18)에 조선 사신들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영안사에서 향을 피운다는 연락을 받고 신무문 밖에서 대기하여 황제를 만났다(『정조실록』 18년 2월 22일).

1803년(순조 3) 중국으로 사행을 갔던 어느 사신이 쓴 『계산기정(薊山紀程)』에서 영안사와 백탑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안사는 성안의 북쪽 거리에 있다. 앞뒤에 불전(佛殿)이 마련되어 있는데 불전 가운데는 100여 개의 보살이 놓여 있다. 불전 앞에 비석을 세우고 기록했다. 그리고 백탑은 8각에 13층으로 높이가 36장, 둘레가 17, 8칸이다. 아래에 일곱 층을 마련하고 그 위에다 탑신(塔身)을 앉혀 놓았는데, 여덟 면에는 면마다 나한(羅漢) 하나와 신장(神將) 둘이 새겨져 있어 위아래를 모두 합하면 104가 된다. 또 중간층에 나무 서까래를 얹어서 소슬처마를 만들었는데, 한 면이 각기 35개씩의 서까래이고 한 면마다 쇠로 만든 풍경을 달아 놓아 바람이 한번 그것들을 흔들면 댕댕거리는 소리가 구름 밖까지 어지럽게 흩어져 나간다. 꼭대기에는 구리 기둥을 세웠는데 그 줄기에 마디를 지워 5층으로 만들었고 철사로 매어 놓았다. 탑 위 넷째 층에 ‘벽한유광(碧漢流光)’ 네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그 곁에 글자가 지워진 비석 하나가 서 있다. 탑 뒤에 큰 전각(殿閣)이 있는데 불상 3구를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