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린국사의(宴隣國使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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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즉 인국(隣國)의 사신에게 연향을 베푸는 의식.

개설

일본·유구국(琉球國) 등의 이웃 나라 사신이 왕에게 국서(國書)와 폐백(幣帛)을 올리는 수린국서폐의(受隣國書幣儀)를 행한 후 연이어 베푸는 연향 의식이다. 오례(五禮) 중의 빈례(賓禮)로 행해졌다. 수린국서폐의가 의례적 측면이 강한 것에 비해 연린국사의(宴隣國使儀)는 연향의 성격이 강한 의례이므로 꽃, 음식과 술, 음악이 수반된다. 중국 사신연에서 돌리는 술이 일곱 순배임에 비해 이웃 나라 사신을 위한 연향에서는 다섯 순배로서 그 규모가 차등화되어 행해졌다. 왕이 연회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근정전(勤政殿)이 아닌 서쪽 행랑에서 시행하였다. 왜(倭)나 야인(野人)의 추장(酋長), 사인(使人)은 남쪽 행랑에서 접대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에 일본·유구국 등의 외교는 교린(交隣)의 예로 행해졌다. 이는 중국과의 외교가 사대(事大)의 예로 행하는 것과는 그 위격이 구분된다. 이들을 연향하는 의례도 아울러 차등화하였다. 세종대에는 일본의 사신이 인정전(仁政殿)에서 예를 표하기도 했다. 사신과 부사(副使)를 위한 음식 대접은 육조(六曹)의 조계청(朝啓廳)에서 했고, 나머지의 객인(客人)은 동랑(東廊)과 서랑(西廊)에서 접대한 경우도 있었다(『세종실록』 5년 12월 25일). 『세종실록』 「오례」에 의례 절차가 처음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 이후 성종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도 같은 의례가 수록되어 있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국서와 폐백을 받는 수린국서폐의를 마친 후 시작된다. 먼저 전악(典樂)이 노래를 부르는 가자(歌者)와 금(琴), 슬(瑟)을 연주할 악인을 이끌고 들어온다. 이어 사신(使臣)의 자리를 어좌 서남쪽에 동향으로 배치하고 사신 이하의 절하는 자리, 연향을 위한 술 등을 준비해 놓는다. 모든 호위 관원은 복식을 갖추고 대기한다. 자리를 정비한 후에는 객사(客使)를 맞이하며 의례를 진행하는데 배례, 선교(宣敎), 진찬안(進饌案), 진화(進花), 제1잔(盞), 진탕(進湯), 제2잔, 진탕, 제3잔, 진탕, 제4잔, 진탕, 제5잔, 진탕, 진대선(進大膳), 배례, 환어(還御)의 순으로 행한다.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왕이 들어와 어좌(御座)에 오르고 연주를 그치면 사신이 들어와 4번 절하는 배례를 행한다. 왕이 “객사를 맞아 전에 오르라.” 명하면 사신은 서쪽 편계(偏階)로 올라 좌석에 앉는다. 사신이 자리에 앉으면 사옹원(司饔院) 제조(提調)가 왕에게 찬안(饌案)을 올리며 제거(提擧)는 찬탁(饌卓)을 설치한다. 이어 왕과 사신에게 꽃을 올리면 가자와 금, 슬 연주자가 연주를 준비한다. 술이 준비되면 음악을 연주한다. 술은 제1잔부터 제5잔까지 올리며 매 잔의 사이에는 탕을 올린다. 제5잔에 이어 사옹원 제조가 왕에게 대선을 올리면[進大膳] 제거는 사신에게 선(膳)을 낸다[設膳]. 찬안과 찬탁을 치우면 사신이 절하는 자리로 돌아가 4번 절하는데, 몸을 굽히면 음악을 연주하고 4번 절하고 일어나 바로 서면 연주를 그친다. 좌통례(左通禮)가 예를 마쳤음을 아뢰면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왕이 어좌에서 내려온다. 왕이 전문을 나서려 하면 고취(鼓吹)를 연주하며 왕이 사정전(思政殿)으로 돌아가면 연주를 그치고 좌통례는 경계를 풀며 병조(兵曹)는 의장을 해산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통문관지(通文館志)』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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