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당(小人黨)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소인의 붕당을 의미하며 당쟁 과정에서 주로 상대 당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됨.

개설

중국송나라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구양수(歐陽脩)의 「붕당론」에 의하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붕당을 소인당이라고 했다. 소인당이라는 말은 군자당의 반대말로서 소인의 당 무리를 일컫는 말이지만, 조선시대 당쟁 과정에서 상대방의 당파 인물들을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소인과 소인당이라는 말은 주자성리학의 심성론·인간관과 결합하면서 당대 지식인 사회에 널리 퍼져나갔고, 이는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내용 및 특징

구양수와 주희(朱熹)는 군자가 합심하여 소인들을 물리치고 공평하고 바른 하나의 도리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붕당정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조선초기만 해도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상대 당파도 같은 군자로서 인정하였다. 다소의 갈등은 있었지만 상대의 존재 자체를 극단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서인으로 분류되는 이이가 서인이라고 해서 모두 군자는 아니며 동인이라고 해서 모두 소인은 아니라고 한 데에서 이 같은 사실을 엿볼 수 있다(『선조실록』 16년 10월 22일). 이러한 태도에 급격한 변화가 온 것은 현종 때 벌어진 예송(禮訟)논쟁 이후부터이다.

변천

예송 이후 당쟁은 격화되어 상대 당을 전적으로 소인당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것은 더욱 극단적인 양상을 띠어 숙종대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출되었다가 복위되고, 왕위 계승이 당쟁의 대상이 되어 붕당 간의 다툼이 격화된 시기에는, 소인당은 곧 역적의 당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상대 당을 역적으로 만드는 충신과 역적의 논리는 사림정치 자체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 논리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이후 탕평정치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하였다(『영조실록』 1년 1월 3일). 탕평정치의 논리는 각 당에 군자와 소인, 충신과 역적이 있으니 어느 특정 당파가 모두 소인의 당이며, 역적의 당은 아니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논리는 당파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자는 조제론(調劑論)으로 나타났으며, 탕평정치 이념의 가장 근원적인 전제였다.

참고문헌

  • 신항수, 「사실 이렇게 본다-당쟁」, 『내일을 여는 역사』14,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