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번재(燒幡齋)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시왕[十王]에게 재를 마치고 시왕의 번을 태우는 불교 의식.

개설

명부 시왕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 끝나면 의식에 사용된 시왕의 화상(畵像)과 이름을 쓴 번(幡)을 태우는 의식을 소번재(燒幡齋)라고 칭했다. 번은 불가에서 부처와 보살의 성스러운 덕을 나타내는 깃발로, 꼭대기에 종이나 비단 따위를 가늘게 오려서 다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소번재는 독립적으로 행해진 고유한 의식의 명칭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번을 태우는 소번(燒幡) 의식은 수륙재나 영산재와 같은 큰 재를 마치면 상단·중단·하단에 모셨던 번이나 위패를 불사르며 청해 모셨던 이들을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봉송 의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원 및 변천

소번재라는 명칭은 조선 중종 때 강원도 원주 사람이었던 진사 김위(金渭)의 상소에 처음 등장한다. 이 상소에 "두세명의 남녀 승려가 머리를 땋아 늘이고 일반인 복장으로 은밀히 내전의 명이라 일컬으며 산중의 절에 출입하면서, 쌀과 재물을 많이 가져다가 재승(齋僧)하고, 당개(幢蓋)를 만들어 산골 여기저기에 늘어놓고, 또 시왕[十王]의 화상을 설치하여 각각 전번(牋幡)을 두며, 한 곳에 종이 100여 속(束)을 쌓아두었다가 법회를 베풀고는 저녁에 다 태워버리면서 소번재(燒幡齋)라 이름 합니다."(『중종실록』 13년 7월 17일)라고 하였는데, 이에 의하면 소번재는 시왕재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왕에게 공양을 하는 의식은 대례왕공양문(大禮王供養文)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시왕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은 그 연원이 자못 길다. 당나라 후기 불교의 염마라왕과 도교의 시왕 사상이 결합된 형태의 사후 추천 천도라는 말은 실록이나 조선시대에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천도라는 말이 일상화된 것은 현대의 1970년대 이후의 일로 여겨지며, 조선시대 용어로는 추천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의례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승되는 불교 의식집인 『제반문(諸般文)』류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의식이 주로 시왕에 공양을 권하는 의식이다. 이때는 지장보살을 주존(主尊)으로 하여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의 3성인이 증명이 되고, 진광대왕·초강대왕·송제대왕·오관대왕·염라대왕·변성대왕·태산대왕·평등대왕·도시대왕·오도전륜대왕의 시왕과 중생들의 선악을 판단하는 24위의 제위판관과 29제왕 등등과 권속을 청하여 자리에 모시고 공양을 올린다. 시왕과 권속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씨로 번에 써 모시게 되는데, 이 기사처럼 저녁에 법회가 끝나면 그것을 태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청해 모셨던 시왕의 화상과 번을 태워버리며 봉송하는 장면이 재 의식의 백미였다고 보이며, 이 시왕 공양 의식은 지장신앙·십재일신앙과 더불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절차 및 내용

대례왕공양문 의식과 수륙재의 봉송 의식을 통하여 소번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례왕공양문에 의하면 종을 치고 바라를 울린 다음 향의 공덕을 찬탄하는 할향(喝香)과 향을 사르는 연향게송을 하고 합장하여 아뢰는 고향(告香)게송으로 법회가 열리게 되었음을 알리며 법회에 임해 주시기를 청한다. 이어 도량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 행해진다. 향수를 뿌리는 진언과 천수다라니를 염송하며 도량을 청정히 하고 상단을 청해 차를 올리고 상황을 보아 경전을 염송하는 의식을 행한다. 이어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하는 중단 거불(擧佛)과 소청 의식이 행해진다. 이어 시왕과 태산(泰山)·판관(判官)·가연(迦延)·악독(惡毒)·동자(童子)·사자(使者) 등을 청해 차를 올린다. 청하는 의식이 끝나면 상단에서부터 공양을 올리기 시작한다. 중단의 지장보살과 시왕 등에게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한다. 이어 하단의 영가들을 청해 음식을 베푼다. 공양 의식이 끝나고 나면 삼단에 청해 모셨던 불보살과 영가들을 돌려보내는 봉송(奉送) 의식이 진행된다. 삼단의 화촉과 위패들이 나열해 서는 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의식을 주관하는 자인 유나(維那)는 의식의 시중을 드는 판수(判首)와 사미 5명에게 명하여 5여래의 명호를 적은 번개(幡蓋)를 받들고 뜰 가운데에 서 있게 하고, 또 사미로 하여금 하단의 꽃과 등촉을 받쳐 들고 5여래의 뒤에 서게 하며, 또 종두(鐘頭)를 시켜서 부처의 명호 등을 적은 신번(神幡)을 받쳐 들고 꽃과 등촉의 뒤에 서게 하고, 또 시주(施主)를 시켜 가친(家親)의 위판(位板)을 받쳐 들고 신번 뒤에 서게 하며, 그 다음에 시주로 하여금 주인 없는 번을 받쳐 들고 가친의 뒤에 서게 하고, 또 사미를 시켜서 종실번(宗室幡)을 받쳐 들고 주인 없는 번 뒤에 서게 한다. 하단에는 법회를 주관하는 법주(法主)와 음식 공양 담당인 말번주(末番主)가 차례대로 서서 봉송을 시작한다. 봉송을 할 때는 시련으로 청해 모실 때와 반대로 봉송한다. 봉송할 때 ‘내가 지금 봉송하게 되었으니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재 도량을 열게 되면 다시 오라’는 게송으로 끝맺게 된다.

참고문헌

  • 『권공제반문(勸供諸般文)』
  •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