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素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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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말기에서 후한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아시아 의학 최고의 경전이자 의학 이론서.

개설

『소문(素問)』은 전국시대 말기에서 후한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가장 오래된 의학 경전으로서 삼국시대 이래 한의학(韓醫學)에서도 의학 교과서로 받아들여졌다. 송(宋)대 교정의서국에서 소문 81편, 영추 81편으로 재편하였다. 당(唐)대 왕빙(王氷)의 교주본, 송대 신교정본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역대 수많은 의가에 의하여 주석본이 집필되었다. 조선에서는 『의방유취(醫方類聚)』에 「인용제서」로 올라 있으며, 조선중기에 허준이 내의원에서 교정하여 간행한 판본이 가장 널리 보급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종대에 충주사고(忠州史庫)의 서책을 꺼내어 『황제내경』을 새로 찍었다고 하였고, 선조 중기의 『고사촬요(攷事撮要)』에 충주판(忠州板), 서유구의 『누판고(鏤板攷)』에 경주장판(慶州藏板)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 일본에는 을해자본(乙亥字本)과 성종대에 찍은 목판본이 전한다고 하였으나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선중기의 내의원간본에는 감교관(監校官)으로 내의원(內醫院)직장(直長)이었던 이희헌(李希憲)과 윤지미(尹知微)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이들은 『동의보감』을 전후로 허준이 펴낸 많은 종류의 의서를 간행하는 일에 동참하였으며, 조선중기 한의학을 발흥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서지 사항

현재 우리가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대개 광해군대에 나온 내의원(內醫院) 각본(刻本)으로 1615년(광해군 7)에 간행한 『신간보주석문황제내경소문(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이었다. 이 책의 원본은 계현자주(啓玄子注)에 북송의 교정의서국(校正醫書局)에서 임억(林億)·손기(孫奇)·고보형(高保衡) 등이 교감하고 손조(孫兆)가 다시 잘못된 것을 고친 것으로 보통 왕빙차주본(王冰次注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판은 권수와 책 수를 달리한 여러 가지 이본(異本)과 후쇄본(後刷本)이 전하며 동활자나 목활자본도 등재되어 있는데, 어떤 판에서는 송나라 유온서(劉溫舒)의 『소문입식운기론오(素問入式運氣論奧)』(3권 1책)가 함께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구성/내용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이미 『황제내경(黃帝內經)』이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었다. 권39 잡지(雜志)에 보면, 692년(신라 효소왕 원년)에 처음으로 의학교수(醫學敎授)를 두어 본초(本草)·갑을(甲乙)·소문(素問)·침경(鍼經)·맥경(脈經)·명당경(明堂經)·난경(難經) 등을 가르치고 박사 2명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기록이 없어진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이보다 앞선 시기, 또는 비슷한 시기에 의학 경전으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사』에는 1091년(고려 선종 8)에 송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사신으로 보내 고려에 비장된 고전적을 요청하므로 황종의(黃宗懿)에게 『침경』 곧 『황제침경(黃帝鍼經)』을 보낸 사실(史實)이 적혀 있었다. 이때 송나라 황제가 요구한 목록을 보면 128종에 어림잡아도 4,000여 권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물론 중국에서 이미 잃어버린 많은 수의 희귀서가 모두 고려에 있진 않았겠지만, 칙서에 “귀국에 좋은 서적이 많이 있다니 비록 권수가 모자라고 차례가 빠진 것이라도 반드시 전사(傳寫)하여 보내길 바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려에 좋은 책이 많이 있다고 중국에 널리 알려진 것만은 분명하였다.

목록 가운데(중에) 전문 의학서로는 『고금록험방(古今錄驗方)』 50권, 『장중경방(張仲景方)』 15권, 『심사방(深師方)』, 『황제침경』 9권, 『소품방(小品方)』 12권, 『도은거효험방(陶隱居效驗方)』 6권, 『동군약록(桐君藥錄)』 2권, 『황제태소(黃帝太素)』 30권, 『명의별록(名醫別錄)』 3권 등이 보이는데 대부분 오늘날까지도 없어진 상태이거나 일부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때 고려에서 찾아 보낸 『황제침경』으로 현전하는 『황제내경영추(黃帝內經靈樞)』를 재편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인종(仁宗)대에는 의업식(醫業式)에 『소문』의 경문 8조문을 걸어 두고서 시험을 치렀다고 하였으니 두 사서의 기록만으로도 신라와 고려시대에 이미 『소문』이 부동의 기본 의학서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에서 두루 보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이로써 조선의 의서 역시 주변 국가에 널리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세종·세조·영조 등 역대 임금의 재위 시에 의학 취재(醫學取才) 고강서(考講書)로 쓰였으며, 『속대전(續大典)』의 의과 강서(醫科講書)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 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 안상우, 「三國史에 전하는 한의학의 바이블-『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고의서산책』 69회, 민족의학신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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