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색(書房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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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되어 왕의 지필묵(紙筆墨)을 마련하여 올리던 관원.

개설

서방색(書房色)은 궁궐 내 각 차비인(差備人)으로 액정서에 소속되어 왕에게 지필묵을 마련하여 올리는 임무를 맡은 관원이다. 정원은 2명으로 대전서방색(大殿書房色)은 정7품 사안(司案), 종7품 부사안(副司案)에 각기 1명씩 임명되어 업무를 분장하였다. 정6품 사알(司謁)·사약(司鑰)까지 오를 수 있었다.

담당 직무

서방색은 지필묵을 마련하여 올리는 임무 외에 사안이나 부사안이 되어 궁궐의 의식에 설치되는 향안(香案) 등의 일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액정서가 각종 잡무를 담당하던 관서였던 만큼 서방색은 월식(月蝕)이 예고되면 서운관 관원들과 북악산에 올라가 이를 살펴보았으며(『세종실록』 7년 5월 15일), 홍문관·춘추관에 나가서 중국의 서적을 베껴 쓰는 일을 담당하였다(『세조실록』 12년 11월 17일). 또한 응방(鷹坊)에 소속되어 매와 매사냥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고(『세종실록』 24년 8월 6일), 활과 화살촉을 만드는 궁방(弓房)의 업무를 살피기도 하였다(『성종실록』 20년 7월 16일).

변천

고려시대에는 관서명이었던 서방색은 조선 건국 후 봉서국(封書局)으로 바뀌었다가 봉서지관(封書之官)이라는 기능을 유지한 채 관직으로 바뀌었다. 대전서방색과 중궁전의 사약을 전복랑액정서알자(典僕郞掖庭署謁者)로 일컫게 하였다(『세조실록』 8년 12월 25일). 서방색의 승진은 6품관까지 가능하였으나 연산군 대에는 5품관으로 승진하거나 가자(加資)할 때 관직 제한을 없애도록 하여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연산군일기』 3년 3월 2일), (『연산군일기』 11년 2월 28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