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도(朴致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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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42년(인조 20)~1697년(숙종 23) = 56세]. 조선 후기 현종(顯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승정원(承政院)승지(承旨) 등을 지냈다. 자는 학수(學秀)이고, 호는 검암(黔庵)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거주지는 광주(光州)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박충정(朴忠挺)이고, 어머니 고령 신씨(高靈申氏)는 신필(申滭)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박언감(朴彦瑊)이다.

현종~ 숙종 시대 활동

1668년(현종 9) 별시(別試)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27세였다.[『방목(榜目)』

1680년(숙종 6년)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을 거쳐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이 되었다.[『숙종실록(肅宗實錄)』숙종 6년 7월 8일, 숙종 6년 8월 24일] 이 때 죄인에 대한 절도정배(絶島定配)와 훈적(勳籍) 추록(追錄) 문제를 신중히 처리하도록 상소하였다. 1681년(숙종 7) 다시 사헌부 지평이 되었고, 이어 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그 뒤 북평사(北評事)에 임명 되었다.[『숙종실록』숙종 7년 8월 6일, 숙종 7년 9월 21일, 숙종 8년 1월 7일] 1682년(숙종 8)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승진하였고, 이듬해인 1683년(숙종 9)에 홍문관(弘文館)부교리(副校理)를 거쳐,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었다.[『숙종실록』숙종 9년 윤6월 3일, 숙종 9년 7월 21일] 이어 홍문관 교리(校理) 및 사헌부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숙종실록』숙종 9년 12월 1일, 숙종 9년 12월 18일]

1684년(숙종 10) 승정원 승지에 임명된 이후 오랫동안 승지를 역임하였다.[『숙종실록』숙종 10년 2월 18일, 숙종 12년 2월 30일, 숙종 13년 11월 12일, 숙종 14년 5월 11일, 숙종 20년 윤5월 3일] 한때 동래부사(東萊府使)와 홍주목사(洪州牧使)를 지내기도 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며, 김만중(金萬重) 등과 깊이 사귀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명재유고(明齋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