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朴宗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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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75년(영조 51)~? = ?]. 조선 후기 순조 때 활동한 문신. 참판(參判)을 지냈다. 자는 여수(汝受)이고, 호는 만촌(晩村)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박준원(朴準源)이고, 어머니 원씨(元氏)는 원경유(元景游)의 딸이다. 누이가 순조(純祖)의 생모인 박수빈(朴綬嬪)다. 증조부는 통덕랑(通德郞)박필리(朴弼履)이고, 조부는 공주 판관(公州判官)박사석(朴師錫)이며, 조모 기계 유씨(杞溪兪氏)는 유수기(兪受基)의 딸이다.

순조 시대 활동

박종희는 선비 가문의 후예로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다.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올라 1812년(순조 12) 강원도의 평강현감(平康縣監)이 되었고, 그 해 포천현령(抱川縣令)이 되었다. 1821년(순조 21)에 종척집사(宗戚執事)가 되었고, 1822년(순조 22) 1월에 승지(承旨)가 되었다. 그 해 12월 종척집사로 차출되어 정조의 능인 건릉(健陵)의 천장을 비롯한 왕실의 상례(喪禮)에 참여하였으며, 그 공로로 1824년(순조 24) 12월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를 가자하였다. 그의 벼슬로는 승지가 된 이후 호군(護軍) 등의 관직을 거쳐 참판(參判)에 까지 이르렀다. 저서로는 『만촌만고(晩村漫稿)』 1책이 있다.

묘소와 가족

묘소는 경기도 여주에 있다. 부인 이씨(李氏)는 첨지(僉知)이언찬(李彦燦)의 딸이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청선고(淸選考)』
  • 『한국인(韓國人)의 족보(族譜)』
  • 『진신보(搢紳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