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관(朴以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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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성종~중종 때 활동한 문신.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보덕(輔德)을 지냈다. 자는 자유(子裕)이고, 호는 보옹(葆翁)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거주지는 남평(南平) 곧 전라도 나주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박수화(朴遂和)이다. 부인 서산유씨(瑞山柳氏)는 유정(柳丁)의 딸이다.

성종~중종 시대 활동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다음 1492년(성종 23)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1503년(연산군 9)에는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이 되었다. 1509년(중종 4)에는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으로 있었고, 1514년(중종 9) 11월에는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다. 그 뒤 홍문관(弘文館)전한(典翰)·세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518년(중종 13)에는 담양부사(潭陽府使)로 있었고, 그 뒤 홍주목사(洪州牧事)를 지냈다. 그러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 젊은 많은 선비가 화를 입음을 보고 조정에서 물러나 동생 박이홍(朴以洪)과 더불어 명산을 순례하며 자연을 즐기며 학문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제향

전라도 창평의 유곡사(維谷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담양읍지(潭陽邑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전라남도지(全羅南道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