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서(朴奎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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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95년(정조 19)~1870년(고종 7) = 76세]. 조선 후기 순조~고종 때 활동한 문신·학자. 행직(行職)은 승정원(承政院) 우부승지(右副承旨)이다. 자는 경여(慶汝)이고, 호는 취죽(翠竹)이다. 본관은 죽산(竹山)인데, 아버지는 행용양위 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절충장군(折衝將軍)박진호(朴震祜)이며, 어머니 풍천노씨(豊川盧氏)는 노정추(盧廷樞)의 딸이다. 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는 현감(縣監)권현중(權顯中)의 딸이다.

순조~고종 시대 활동

1825년(순조 25)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827년(순조 27)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이 되었고, 1829년(순조 29) 부정자(副正字)가 되었다가 승문원(承文院) 저작(著作)이 되었다. 1830년(순조 30) 승문원 박사(博士)·예조 좌랑(佐郞)·종부시(宗簿寺)주부(主簿)·사직서(社稷署) 령(令)을 지냈다. 1831년(순조 31)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이 되었다. 1839년(헌종 5) 성균관(成均館)전적(典籍)이 되었다가 양현고(養賢庫)주부(主簿)가 되었다. 1840년(헌종 6)에 다시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843년(헌종 9) 이조 좌랑(佐郞)·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을 지냈다. 1849년(헌종 15·철종 즉위)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가 되었다가 자인현감(慈仁縣監)이 되었다. 1850년(철종 1)부터 1859년(철종 10)까지 춘추관(春秋館) 기사(記事)·병조 정랑(正郞)·사헌부 장령(掌令)·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승정원 좌부승지(左副承旨) 등을 역임했다. 1861년(철종 12)부터 1864년(고종 1)까지 승정원 동부승지와 우부승지를 역임하면서 경연(經筵)참찬관(參贊官)을 겸하였고, 형조 참의(參議)·장단도호부사(長湍都護府使) 등을 지냈다. 1870년(고종 7)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는 76세였다. 저서로는 『취죽집(翠竹集)』이 있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고종편)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박주대 편저, 『진신팔세보(縉紳八世譜)』[문과편(文科編)], 경인문화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