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지(朴敬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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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10년(광해군 2)~1669년(현종 10) = 60세]. 조선 중기 인조~현종 때 활동한 무신. 행직(行職)은 총융사(摠戎使)이다. 자는 형보(亨甫)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증조부는 이조 참판(參判)박수종(朴壽宗)이고, 증조모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제(李禔)의 딸이다. 조부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박영(朴英)이고, 아버지는 호분위 우부장(虎賁衛右部將)박사심(朴思深)이다.

인조~현종 시대 활동

1635년(인조 13) 증광시(增廣試)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1636년(인조 14) 무과 중시(重試)에서 장원 급제하였다. 무관직을 거쳐 1643년(인조 21) 5월에 남병사(南兵事)가 되고, 1648년(인조 26) 12월에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가 되었다.

1651년(효종 2) 9월에 정주목사(定州牧使)가 되었고, 1654년(효종 5) 11월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가 되었으며, 1658년(효종 9) 12월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가 되었다.

1660년(현종 1) 1월에 삼도 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고, 1664년(현종 5) 평안도 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가 되었다. 1665년(현종 6) 3월에 수원부사(水原府使)가 되었다가, 11월에 우포도대장(右捕盜大將)이 되었다. 1666년(현종 7) 10월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1669년(현종 10) 1월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이 되었으며, 3월에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으로 총융사(摠戎使)가 되었다.

성품과 일화

박경지는 평생 충의와 청백함을 신조로 삼았는데, 군율을 엄정하게 하였으므로 부하들이 그를 경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원부사에 부임한 이후로는 행정을 부하에게 맡기고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고도 한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병자12월12일 중시방(丙子十二月十二日重試榜)』(인조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