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馬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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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조상, 노인에 대한 존칭, 부락의 추장 등을 이르는 만주어의 한자 이름.

개설

선대의 조상, 노인에 대한 존칭, 부락의 추장 등을 이르는 만주어 마파([馬法], mafa)의 한자 음역어이다. 마법은 특정한 관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어른[長者]을 의미하며, 주로 존칭으로 쓰였다. 『청문감(淸文鑑)』에는 마파라는 것이 한문의 ‘노옹(老翁)’과 같은 말이라고 나타나며, “나이가 많은 노인을 높여 마파라고 칭한다.”고 설명하였다. 또 『어제증정청문감(御制增訂淸文鑑)』에 따르면 마파는 곧 ‘조(祖)’를 가리킨다고 나타나고 “부친의 선대를 일러 조(祖)라고 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마파는 어른이나 노인, 선조 혹은 저명한 추장 등을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주로 부계의 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다가 청대에는 특정 업무를 전담하는 관원을 이르렀다. ‘瑪法(마법)’으로도 표기하였다.

변천

『조선왕조실록』에서 마파라는 명칭은 1491년(성종 22)에 처음 등장하였다.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박숭질(朴崇質)이 요동에서 보낸 장계에 여진인들이 명나라 개원(開原)의 참장(參將)을 마파(馬法)라고 부른 것이었다(『성종실록』 22년 8월 25일). 이를 통하여 마파라는 것은 연장자나 조상을 이른 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95년(선조 28) 8월 평안도 위원(渭原)에서 발생한 월경채삼(越境採蔘) 사건으로 인해 건주여진의 침공 위협이 높아지자, 관전(寬奠)에 주둔하고 있던 협수부총병(協守副總兵)마동(馬棟)이 중간에서 조정자의 역할을 하였다. 이때 조선에서 마동에게 보낸 자문에는 건주위의 여진인 수해로(修海老)가 우리의 마법(馬法)이 군마를 모아 전일 위원에서 당하였던 원수를 갚으려 한다고 하였다는 첩보가 기재되어 있었다(『선조실록』 28년 12월 6일). 이는 당시 건주여진인들이 누르하치([奴兒哈赤], nurhaci)를 ‘마파’라고 불렀음을 보여 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으로 보낸 누르하치의 서신에는 스스로를 ‘여직국건주위관속이인지주(直國建州衛管束夷人之主)’라고 불렀는데 이를 통해서 만주어로 어전([額真], ejen)으로 기록되는 ‘주(主)’는 마파라고도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1619년 4월 심하 전투(사르후[薩爾滸] 전투)의 패전으로 조선은 후금과 교섭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때 누르하치를 부르는 호칭이 문제가 되었다. 비변사에서는 함경도 육진(六鎭) 일대의 여진인이 예전에 전해 주었던 문서에 기재된 마법이라는 표현을 편비(褊裨)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해하고 ‘건주위부하마법개탁(建州衛部下馬法開拆)’이라고 기재하게 하였다(『광해군일기』 11년 4월 16일). 이 표현은 조선이 누르하치를 한(汗, [칸])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사정에서 사용된 것이었고, 누르하치도 이를 간파하여 조선의 사신을 힐책하기도 하였다(『광해군일기』 13년 9월 10일). 이후에는 누르하치 혹은 홍타이지를 마파라고 표현한 예를 찾을 수 없으며, 정묘호란을 계기로 홍타이지를 한으로 부르게 되었다.

참고문헌

  • 『만문노당(滿文老檔)』
  • 『청문감(淸文鑑)』
  • 『어제증정청문감(御制增訂淸文鑑)』
  • 장정수, 「16세기 말~17세기 초 조선과 건주여진의 배후 교섭과 신충일의 역할」, 『한국인물사연구』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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