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경(銅人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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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 침과 뜸을 시술하는 경혈과 12경락의 위치 및 시술법을 논한 침구법 기본서.

개설

한의학에서 침과 뜸을 시술하는 경혈과 12경락의 위치 및 침구 시술법을 논한 기본서로 『동인경(銅人經)』 혹은 『동인(銅人)』이라고도 부른다. 대개 그 원류는 고침경에서 비롯하나, 후대의 것은 보통 중국 송(宋)나라 왕유일(王惟一)이 편찬한 『동인수혈침구도경(銅人腧穴鍼灸圖經)』을 모범으로 삼았다.

편찬/발간 경위

원서는 송의 태의원(太醫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고, 돌로 된 비석의 4면 벽에 새겼다. 서명에 ‘동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이 책의 편찬과 함께 왕유일 등이 최초로 1구(具)의 침구 교육용 동인형(銅人形)을 주조한 데서 비롯하였다.

이 책은 한림의관(翰林醫官)상약봉어(尙藥奉御)였던 왕유일(王惟一)이 펴낸 『동인수혈침구도경』을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동인경’ 혹은 ‘동인’이라 불렀다. 1027년(송나라 인종 5)에 이 책을 처음 간행하면서 동인을 주조하여 경혈(經穴)을 새겨 넣었으며, 몇 년 후 다시 경문(經文)을 석비(石碑)에 새겨 세웠다. 세 가지 모두 원본은 없어졌지만, 책은 금(金)대의 판본으로 다시 나왔고, 동인은 근래 러시아의 보물창고에서 발견되었다. 석경(石經)은 송대의 남는 조각 잔편(殘片)이 북경의 성벽 근처에서 출토되었는데, 1443년(명나라 정통 8)에 훼손된 비석을 다시 새겨 세우고 원본을 땅에 묻은 것이었다.

서지 사항

송대에 편찬한 원서명은 『동인수혈침구도경』이라 하거나, 『신주동인수혈침구도경(新鑄銅人腧穴鍼灸圖經)』이라고도 하며, 『동인침구경(銅人鍼灸經)』·『동인경』 혹은 『동인』이라 약칭하였다. 전3권으로 이루어졌다. 송대에 간행한 판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금대에 다시 간행한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의 선본이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초기부터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의학 취재 고강서로 쓰였다.

조선에서는 활자본과 목판본 두 가지를 펴냈는데, 5책 혹은 2책으로 묶여 나왔다. 두 판본 모두 체제는 같고 목록 끝에 숭화(崇化)여지안(余志安)이 근유서당(勤有書堂)에서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원(元)나라 때 중간(重刊)한 것이었다. 조선판은 이 원판본(元板本)을 모본으로 하여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금간본(金刊本)이 조선판의 조본(祖本)이 되는 셈이었다.

조선에서 간행한 기록을 보면, 1553년(명종 8)에 혜민서(惠民署) 교수(敎授)장말석(張末石)이 감교(監校)하여 펴낸 개오중간판(改誤重刊版)이 있고, 1654년(효종 5)에 내각목판(內閣木版), 만력(萬曆) 6년이라 새겨진 동활자본 등이 조사되었다. 장말석에 대해서는 상세하지 않으나 본관은 의창(義昌), 자는 계온(季轀)이며 종손(終孫)의 아들로 1531년(중종 26)에 신묘시(辛卯試)에 의과에 등과하여 의원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서유구의 『누판고(鏤板考)』에서는 『동인침구경』 5권의 판목이 혜민서에 소장되어 있고, 3첩 14장의 인지(印紙)가 소요된다고 기록되었다. 또 전주·밀양·진주·평양 등지에서도 이 책을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는 1578년(명나라 만력 6) 9월 내의원(內醫院) 첨정(僉正)허준(許浚)에게 내린 내사기(內賜記)가 적힌 조선판이 소장되어 있었다.

구성/내용

현전본은 5권으로 『신간보주동인수혈침구도경(新刊補註銅人腧穴鍼灸圖經)』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권수(卷首)에 1026년(송나라 천성 4)에 쓴 하송(夏竦)의 서문, 권3에 저자 왕유일(王惟一)의 자서, 침구피기태일지도서(鍼灸避忌太一之圖序)가 있고, 그 뒤에 ‘지대정병오세(旨大定丙午歲)’라는 간기가 있는데 이것은 송나라 때 펴낸 원서를 금나라 때인 1186년(금나라 대정 29)에 간행한 판본이었다. 『송사(宋史)』 예문지에 ‘신주동인수혈침구도경삼권(新鑄銅人腧穴鍼灸圖經三卷)’이라 한 것으로 볼 때 송대의 원서는 3권뿐이었으나 금판본(金版本)에서 보주(補註)를 가하여 5권으로 만든 것이었다. 후대의 판본에는 3권·4권·5권·7권 등 여러 가지가 있어 서로 차이가 있었다.

판본상 서로 다른 점은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된 것도 정본이 아니고 동인에 새겨진 수혈도 각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갑을경(甲乙經)』에 수록된 명당공혈(明堂孔穴)과 대조해 보니 청령(靑靈)·궐음수(厥陰腧)·고황수(膏肓腧)의 각 2개 혈과 독맥의 영대(靈臺)와 양관(陽關)의 2개 혈이 더해져 전체 혈위(穴位)의 수는 354종 657혈에 이른다고 하였다. 또 중국 침구사박물관에 있는 천성동인(天聖銅人)의 실물 복제상에는 복부 경맥의 순행이 현재의 것과 사뭇 차이가 있었다.

이 책은 조선초기부터 의학 취재 고강서로서 사용되었으며, 이 같은 사실이 『세종실록』 1430년(세종 12)의 기사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듬해인 1431년(세종 13)의 기사에도 전의감(典醫監)에서 의학생도들에게 의방(醫方)을 습독(習讀)시키려 해도 『직지방(直指方)』·『상한유요(傷寒類要)』·『의방집성(醫方集成)』과 『동인경』은 당본(唐本) 하나밖에 없어 공부할 사람은 많고 함께 보기가 어려우므로 글자를 만들어 인쇄해 주길 요청하였다. 또 이 책에 수록된 도형(圖形)은 활자로 인출하기 어려우므로 경상도에서 재목을 구하여 간행하도록 주청하였다. 분급처(分給處)는 주로 전의감·혜민국·제생원 등 의료기관에 집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세조·성종·중종 등 역대 임금의 재위 중 간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영조·순조·고종대까지 면강서(面講書)로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였다.

또한 이 책은 『향약집성방』에 인용되었으며, 『의방유취』의 「인용제서」에도 ‘동인경’이란 약칭으로 등장하여 일찍부터 침구경락의 고전으로 여겨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의보감』「침구편」에 등장하는 27종의 문헌 가운데(중) ‘동인경’의 인용비율은 462조문으로 조문 수로 보아서는 96.3%의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참고문헌

  • 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 안상우, 「구리를 녹이고 石碑에 새긴 小宇宙―『補注銅人經』」, 『고의서산책』 230회, 민족의학신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