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갑사(內甲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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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갑사(甲士) 가운데 궁궐의 시위를 담당하던 군사.

내용

갑사는 조선초기 중앙군의 중추적 군사력을 이루는 군인으로서, 사직(司直)·부사직(副司直)·사정(司正)·부사정(副司正) 등의 관직을 올라 이에 따른 과전(科田)과 녹봉을 받았고, 또 봉족(奉足, 保人)까지 지급받으면서 군역을 수행하는 군인이었다. 이들은 일반 양인의 의무 군역과는 달리 취재(取才) 시험에 의해 선발되었고, 이러한 취재 시험의 응시는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신분적, 경제적 조건이 갖추어진 자에 한하여 가능하였다. 이러한 갑사는 조선초기에 내갑사(內甲士)와 외갑사(外甲士)로 구분되었는데, 특히 1402년(태종 2)에는 갑사 1,000명을 내갑사 400명, 외갑사 600명으로 나누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때 내갑사는 궁궐의 시위(侍衛)를 담당하고, 외갑사는 도성의 순위(巡衛)를 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용례

置三軍都摠制以下官 每一軍置都摠制一 摠制二 同知摠制二 以十司分屬之 皆謂之甲士 內甲士四百 外甲士六百 內甲士分爲四番 左右各二百 輪番入直 李叔蕃掌左番 趙涓掌右番 外甲士則分屬三軍 每軍各二百 分爲三牌 以上大護軍爲牌頭 護軍掌之(『태종실록』 2년 6월 11일)

참고문헌

  • 閔賢九, 『朝鮮初期의 軍事制度와 政治』, 韓國硏究院,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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