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산(金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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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61년(영조 37)~1801년(순조 1) = 41세]. 조선 후기 영조(英祖)~순조(純祖) 때의 천주교도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 거주지는 전주이다. 천민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태일(金太一)이고, 어머니는 김수경(金壽敬)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김인창(金仁昌)이다.

정조~순조 시대 활동

충남 보령의 역촌(驛村)에서 천민으로 출생하였다. 승려가 된 적도 있으나 다시 환속하여 지내다가 ‘내포 지방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의 권유를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이존창의 부탁으로 1798년(정조 22)과 1799년(정조 23) 역졸로 신분을 위장하여 두 차례에 걸쳐 북경(北京)을 왕래하며 중국 교회와의 연락을 담당하기도 하였다.(『순조실록』1년 5월 16일),(『순조실록』 1년 9월 11일),[『사학징의』]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발발하자 전주에서 유항검(柳恒儉)·윤지헌(尹持憲)·이우집(李宇集)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 포도청, 형조에서 차례로 신문을 받은 후 의금부에서 그해 9월 11일 사형판결을 받았다.(『순조실록』 1년 9월 11일),[『승정원일기』순조 1년 9월 12일],[『추안급국안』] 그리고 다시 전주로 이송되어 며칠 후인 9월 17일에 풍남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41세였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사학징의(邪學懲義)』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2, 2006